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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3.12.03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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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2)
 16. 큰 외갓집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시집오기 전에 사시던 외갓집은 삼천포 시내에서 나와 부산 쪽으로 7㎞쯤 가다보면, 고성군 하이면이 나오고, 하이 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오른쪽 바다 쪽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내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에 여름 방학, 겨울 방학 그리고 추석과 설날은 꼭 이 길을 따라 외갓집을 다니곤 했다.

 어린 나는 먼길를 갈 수 없어 나의 친형 화조 형이나, 새동네 사는 이모 집 아들 김문부 형과 같이 이 길를 다니곤 했다

 그때는 삼천포 에서 한내 다리를 건너면 촌인데, 촌 사람들은 하얀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다니며 또 살결이 검어 우리 동네 사람과 차이가 났다.

 한내 다리를 건너 진삼도로 쭉바른 길은 진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가는 길은 용산, 하이면, 고성 더 멀리는 부산까지 가는 길인데, 이 길은 삼천포 장날만 되면 흰 두루마리에 중절모를 쓴 촌 어른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삼천포로 들어 오고는 했다.

 이 길가는 좌우로 모두 밭인데 여름철에는 목화를 심은 목화밭이 더러 있었다.

 나는 여름 방학 때 외갓집 갈 적에는 이 목화밭에 들어가 다 자라지않고 말랑 말랑한 목화열매를 골라 한 주먹 따서 먹었다. 다 자라지 않은 목화열매는 단물이 물끈 나오는게 여간 맛있는게 아니다.

 한참 밭길를 따라 가다보면 하이면 초등학교 앞에 갯벌이 나오는데 이 갯벌에는 겨울철이면 지금은 우리나라에 한 마리도 볼수 없는 백조가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백조를 고니라고 불렀다. 이 백조 떼들이 한 번에 하늘을 날 적에는 하늘은 온통 흰 물결이 넘쳐대는 듯 요동을 치는 모습은 정말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곤 했다.

 또 이 갯벌로 문부 형과 같이 갈적에는 문부 형은 어디서 배웠는지 내가 말이 어려워 따라 할수도 없는 노래를 불렀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기상이다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들의… 전진 전진 바라볼 때에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에 깃발… 보아라 이 강산…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나는 따라 부르고 싶지만 말들이 어려워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갯벌을 지나 언덕을 올라 작은 재를 넘으면 아담한 마을이 펼쳐지는데 이 마을이 고성군 하이면 덕호리 군호부락 즉 나의 외갓집이 있는 동네다.

 군호는 지금은 삼천포 화력발전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 당시에는 전기도 버스도 들어오지 않던 오지 마을이었다.

 언덕에서 군호부락을 보면 눈 앞에 논두렁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전경이 눈에 펼쳐 지는데, 논두렁 가운데 타작 마당이 있고 그 타작 마당 앞에 커다란 집이 우리 큰 외갓집이었다.

 그 집 뒤로 세너 채 건너 집이 막내 외갓집이고, 그뒤로 또 건너 건너 두 번째 외갓집이다. 그리고 세 외갓집 주위로 있는 집들은 사촌들의 집들로 한 일가가 모여 살고 있던 씨족 마을이다.

 원래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세 외갓집 재산이 모두 할아버지 재산이라 큰 부자로 하인도 두고 살았다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재산을 외삼촌 세 분에게 배분해 주었고, 세 분 외삼촌들은 각자 배분받은 재산을 지니고 한마을에서 사시기 때문에 나의 외갓집은 세 집으로 나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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