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욱!”
사내가 불알을 쥔 채 풀썩 주저 앉았고 그녀는 입구 쪽으로 뛰었다.
“이런 니미럴.”
“잡아!”
두 사내가 소리쳤고 나머지 사내들이 일제히 쫓아왔다. 튕기듯 도로로 달려든 그녀는 다가오는 택시를 두 손을 들어 잡았다.
“무슨 일이오?”
노란 옷의 운전사가 상체를 내밀어 확인하려 했으나 그녀는 뒷좌석으로 급히 올라탔다.
“아저씨 빨리요.”
운전사가 다시 힐끗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디로 가능교?”
“그냥, 아무 데나 빨리 가주세요.”
그 때 사내들이 택시로 달라붙었다.
“야 이 쌍년아. 내려!”
“아저씨 제발…….”
수련의 말을 거의 우는 것이었다.
“거 참…….”
차를 출발시키며 내 뱉은 운전사의 불평은 누구에게 하는지 불분명했다.
“쫓아라!”
세 놈은 택시를 따라 달려왔고 나머지 대여섯 명은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로 몰려갔다.
“왜 쫓기능교?”
운전사는 속도를 올리며 물었다. 수련이 대답을 않자 운전사가 다시 물었다.
“유부남허고 바람 핏능교?”
그 경황 중에서도 수련은 피식 웃었다.
‘바람? 바람은 바람이었구나…….’
밀대모자로 가려진 백지한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사흘 전 서울에서 내려온 그는 이날 아침을 먹은 뒤 경로당 노인들과 함께 화평스런 마음으로 감자밭을 매고 있다.
무궁사의 논과 밭은 절 뒤 속칭 양지골이라는 산기슭에 있었다.
햇볕이 천태산골 중에서는 가장 오래들고, 오른쪽으로는 풍부한 유량의 계곡이 흘러 정성만 주면 만족스런 수확을 주는 땅이다.
모처럼 백지한이 허리를 폈다. 계곡 아래에서 때 맞춰 바람 한 점이 날아왔다. 상쾌했다. 그는 산골 평지를 휘 둘러보았다. 이 해에도 삼천여 평의 그곳엔 어린 고추, 깨, 상추, 시금치 등이 봄 햇살을 받으며 잘 커주고 있었다. 경노당 노인들이 유기질 농법으로 가꾸고 있는 자식 같은 농작물들이다. 절 내 대중들의 공양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 이 것들은 농약과 비료가 전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비싼 값에 도회지로 팔려나간다.
새로이 책 출간을 구상하고 있는 백지한의 가슴은 파릇파릇 피어나는 새싹 마냥 푸르러 있었다. 하늘을 쳐다본다. 한가로이 떠가던 구름 이 태양의 따가운 빛을 가려주고 있었다. 만족스런 얼굴로 다시 허리를 굽히던 백지한이 문득 얼굴을 들었다.
‘응?’
장삼을 휘날리며 오행자가 숲길을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백거사님-!”
서마산 인터체인지 쪽으로 내달아가는 택시를 사내들이 검정색 그랜져가 가로막은 것은 북성초등학교 앞이었다. 운전사가 백미러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따돌릴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다급해진 수련은 지갑을 열며 말했다.
“그럼 아저씨. 제 부탁좀 들어주시소.”
“무슨……?”
그녀가 백만원권 수표를 그에게 내 밀었다.
“……!”
사내의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받으세요, 사례빕니더.”
“……?”
“제가 앉은 이 자리 방석 밑에 봉투 하나를 놓고 갈 테니 그걸 좀 전해 주이소.”
이윽고 사내가 돈을 받아 들었다.
“어디로?”
“삼랑진 천태산에 가면 무궁사라는 절이 있습니더.”
“무궁사?”
“예. 그 절에 가서 주지스님을 찾으시면 됩니더.”
“그라몬 빨리 내리소.”
“꼭 좀 부탁하입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