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논에서 온 가족이 빽빽하게 들어서 품앗이로 모내기를 하던 모습， 논두렁밭두렁에 앉아 새참을 나누어 먹던 모습， 황금 들녘엔 허수아비가 늘어서 있고， 이따금 들려오는 경운기 소리가 신기하게 들리던 그때， 그런 정겨운 모습들이 직장에서 오십보백보 경쟁하며 사는 동안 사라져 갔다.
지금 농업분야에선 개방화에 따라 값싼 수입농산물이 물밀 듯 밀려와 어떤 작목을 어떤 방법으로 맞서야 생산비를 건질지 도무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대내외 환경이 악화됐다. 전통적 농법으로도 온가족의 생계를 해결해 왔던 우리 부모 세대는 미처 대응할 태세도 갖추지 못한 채 생업을 계속해야 할 지， 포기해야 할 지 암담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내가 만난 한 농업인은 "우리 농촌의 앞날은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고령화와 인력난， 자녀결혼문제， 영농자재가 인상， 부채로 많은 농가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해 가슴이 아팠다. 세계 어느 나라도 농업을 포기하고 선진국이 된 예는 없다. 농업이 가져다주는 자연재해 예방과 환경보전만 하더라도 그 공익적 기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국민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 통일 시대를 대비해서라도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가 농촌을 지키고 가꿔 나가는데 한 치의 주저함도 없어야 할 것이다.
농촌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작은 일에서부터 실천하는 일이다. 농사는 누구나 지을 수는 있어도 아무나 짓는 건 아니다. 힘들고 어렵고 외로우며 삭막하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농촌의 아름다운 경관과 쾌적한 삶의 공간을 누린 데 대한 고마움을 농촌과 농업인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것이 세계 일곱 번째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 인구 5천만 이상)회원국， 무역규모 세계 7위， 런던올림픽 세계 5위라는 위상을 가진 국가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공사는 국민의 먹을거리 생산기반 조성과 농어촌자원의 선량한 이용관리 및 농어촌지역의 가치증진을 통해 농어촌의 경제ㆍ사회적 발전과 국토환경보전에 기여하는 준정부기관으로 매년 고객만족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농업인을 내 부모ㆍ형제처럼 맞이할 때 진솔한 대화로 소통할 수 있어 고객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산업화ㆍ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됐던 농업인 계층에 대한 배려가 될 것이다.
농업인과 함께 땀 흘려 일하는 농촌체험을 하면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해 온 뿌리 깊은 농업과 농업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15여 년 전부터 300㎡가량의 텃밭을 가꿔 오고 있다. 젊었을 때는 저 따위 소득 없는 일을 무엇 하려 하냐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농촌과 농업이 내 삶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농촌체험은 자신의 건전한 여가생활과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유익할 뿐더러 농업인의 땀과 결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크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땀 흘려 일하다 지친 몸이지만 요즘 같은 마지막 여름밤이면 이름 모를 풀벌레의 우렁찬 합창이 쌓였던 피로를 풀어 주고 서늘한 가을로 안내한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촌만의 낭만이요， 향수다. 곧 다가올 추석에는 우리 모두의 아늑한 고향， 농촌의 풍성함과 정겨움을 고향방문으로 새롭게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