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04:50 (월)
제4화 통일절<32>
제4화 통일절<32>
  • 오뉴벨
  • 승인 2012.05.20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4화 화가와 모델 (7)

"벗는 모습 쪽팔려서 미리 벗었죠"

 화단에서 가장 비싼 그림값을 받는 <보리밭 화가> 나파엘 장(40세)의 일곱 번째 전시회가 온갖 찬사 속에 열리는데, 스포츠센터에서 조교로 알바를 하는 꽃미남 니쿤(20세)이 구경왔다가 그녀의 모델이 된다. 그리고 나파엘 장 화가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꽃제비의 음모를 감춘 니쿤의 위험한 사랑놀이는…?

 "이제 내가 널 갖고 싶구나!" 
 "……?!"  
 그때 그녀는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어서 경악에 찬 눈길로 그를 쏘아보자  
 "허허! 내 그림의 누드모델로 말이다. 넌 내 앞에서 벗을 수 있겠지?"
 "…네!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그 순간 그녀는 감히 거절할 수도 없었지만 이미 고향의 동네 대학생 오빠에게 순결까지 바친 여자였기에 조용히 옷을 벗었던 것이다. 아니 지난 몇 년 동안 최돈만 교수에게 미술수업의 사사를 받아오는 동안에 그림이란 삶과 생명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도덕과 위선의 탈쯤이야 얼마든지 과감히 벗을 수 있잖은가 하는 예술적 자유인으로 거듭 태어나고 싶었다고나 할까? 
 "허허! 장봉순 화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스스로 미의 여신이로구나! 내가 만난 어느 모델보다 눈부시단 말이야!" 
 이렇게 시작된 최돈만 교수의 모델 노릇이 어느덧 일년쯤 지났을 때 그녀에게 최후 통첩같은 그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젠 너의 육체를 나에게 줄 수 있겠니? 우린 사제관계가 아니라 같은 화가의 길을 가는 예인(藝人)으로서 하나가 되고 싶구나! 지금까지 봉순인 오직 육(肉)으로만 내 앞에 존재했으나, 이젠 나의 영(靈)을 섞어 너와 내가 영육(靈肉)을 함께 하고 싶단 말이다!"  
 "……!" 
 그녀는 말없이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50여 평생을 아내도 없이 오로지 그림하고만 살아온 고통과 환희로 마치 빨강과 파랑 물감이 섞여 보라가 탄생하듯이, 그는 세상의 평상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녀에게 비쳐 보였던 것이다. 그 순간 그녀는 그를 위해 아낌없이 전부를 바치고 싶어졌다.
 "고맙다. 정말 이래서 안 되는 줄을 안다만…! 화가가 모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건 독약을 마시는 거라고,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 그렇게 강조하셨지만, 난 역시 별 수 없는 인간인 모양이야!" 
 그는 독백처럼 중얼거리며 이미 누드모델로서 나신이 되어 있는 그녀에게 그의 몸 전체로 육화(肉畵)를 그리기 시작했다.
 `스승님! 바로 그 다음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죠! 하지만 이 집과 모든 유산을 제게 남겨 주신다는 유서를 미리 써놓으셨을 줄이야…!`
  나파엘 장 화가가 최돈만 교수의 추억에서 깨어났을 때, 니쿤은 벌써 완전한 누드가 되어 그녀가 한창 작업중인 보리밭 배경의 화폭 앞에 우뚝 서있는 게 아닌가? 
 "화가님! 무슨 생각에 그리 골똘하셨어요? 절 이렇게 세워놓고…?" 
 "으응! 어느새 벗은거야? 호호!" 
 그녀가 미안하고도 쑥스러워서 이렇게 얼버무리자, 니쿤이 그의 습관적 살인미소와 함께 짓궂은 표정으로 바꾸며 말했다.
 "아무리 화가님의 모델이지만 여자 앞에서 벗는 모습을 보이는 건 쪽팔려서 미리 벗었죠! 근데 이렇게 벗기만 함 되나요? ㅋㅋㅋ!"   
 여자 누드모델들과 달리 니쿤은 영 어색스러워 하면서 몸 자세와 시선 처리에 쩔쩔매고 있었다.
 "니쿤은 서울 출신이야? 그래도 종달새 우는 시골 보리밭의 풍경은 상상할 수 있겠지? 그 푸른 초원에서 청노루처럼 당당하게 포즈를 취해보라구!" 
 "어떻게…? 이거 어때요? 스포츠댄스를 할 때 도약의 폼인데요!" 하면서 명랑한 투로 지껄이는 니쿤의 알몸에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던졌다.
 재수생이니까 스무살로 이미 청년기에 들어섰겠지만, 그의 모습은 요즘 한창 인기 드라미인 <제빵왕 김탁구>에서 주인공 김탁구 역을 맡은 탤런트 윤시윤과 너무나 닮아 소년처럼 귀여운 티와 온갖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고 견디는 다부진 의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래! 그 포즈 좋아요! 그대로 있어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