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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위인에게 청렴의 길을 묻다
청렴 위인에게 청렴의 길을 묻다
  • 임문종
  • 승인 2012.05.16 2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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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문 종경상남도 전략산업과
 공직자에게 청렴은 숙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에 발맞추지 못하고 그저 관념으로만 받아들이는 청렴의 의미도 이제는 새롭게 탈바꿈해야만 하는 애처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렇지만 공직자로서 청렴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으며, 관념으로만 남아있는 청렴일지라도 공직사회가 걸어가야 할 준거(準據)가 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교육을 통해서라도 의식 속에 각인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5월 2일 아침 8시, 우리도 직원 40명은 ‘옛 청백리들의 삶의 현장을 둘러보고 진정한 청렴을 길을 찾아 실천해보자’는 목적으로 역사속의 청렴 인물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찾아보겠다고 다짐하며 청렴사적지를 향했다.

 이번 탐방지는 청렴교육이 아니더라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조선 왕조 오백 년 동안 학식과 덕망이 높았고 청렴을 정치와 일상생활에서 실천했던 모범적인 청백리로서 이름을 떨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선생과 방촌(龐村) 황희(黃喜) 정승, 율곡(栗谷) 이이(李珥)선생과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선생을 찾아 떠난다.

 마음속으로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를 떠올려본다. 범인(凡人)도 세 사람이면 그 가운데 반드시 배울만한 사람이 있다 했거늘, 선현들이 역사에 남기신 올곧은 정신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소박하고 청렴한 생활로 백성을 사랑한 오리 정승 이원익은 5척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그마한 육신에 깃든 서릿발 같은 기개와 태산과도 같은 정신은 후학들의 스승으로서 결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특히, 부인 영일 정씨의 죽음을 애달파 하면서 지었다는 ‘도망(悼亡)’은 선생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에 남는다.

 관복 한 벌 청백리의 표상 명재상 방촌 황희 정승의 선비정신이 서린 분단의 땅 파주, 선생의 생애가 전시된 기념관에 둘러보니, 공직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그 어떤 사리(私利)에도 얽매이지 않으셨기에 누옥과 관복 한 벌의 청빈(淸貧)은 오히려 자랑이 되고도 남는다. 기념관을 나와 반구정(伴鷗亭)에 오르니, 임진강은 역사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흐르고, 철조망 넘어 손에 잡힐 듯 북녘 땅이 보인다.

 백성을 위한 삶이 진정 무엇인지 고뇌하는 율곡 이이 선생을 배향한 자운(紫雲)서원을 갔다. 선생이 원칙으로 삼은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 는 우리 모두가 자기 에게 주어진 직분에 맞게 충실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이이(李珥) 선생과 곡산(谷山) 노(盧)씨의 묘에 읍(揖)하고 돌아서다.

 23전 23승 불패신화를 만든 성웅 이순신 장군을 모신 아산 현충사, 누란(累卵)의 위기에서 삼천리 강토와 백성을 온전히 지켜낸 구국의 영웅임을 확인했다. ‘난중일기’에 나타난 지극한 효성은 오늘을 살아가는 후세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또한 부하를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신상필벌을 확행함으로써 전력을 극대화하여 임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가마대신 검은 소를 택하여 청백하게 절조를 지킨 맹사성의 고택 맹씨행단(孟氏杏亶)에 들어서니 다른 사적지에 비해 매우 초라했다. 구괴정은 방촌 황희, 독수와(獨樹窩) 권진(權軫) 선생과 함께 느티나무 세 그루씩을 심어 왕조의 앞날을 논의하던 자리였다고 한다. 황희와 더불어 명재상이 되어 청빈한 삶을 산 인물이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의 의식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청렴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가치는 변함이 없다. 옛 청백리들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니 모두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는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2박 3일간의 탐방을 통해 공직에 몸담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서산대사가 남기신 글로서 느낀 바를 맺고자 한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이라 했다. “눈 덮인 산길을 걸을 때 아무렇게나 걷지 말지니, 오늘 나의 발자국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리니”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공직에서 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에서 직분을 맡은 모든 이들이 좌우명으로 지녀야 할 금언(金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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