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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산동네 <38>
꿈꾸는 산동네 <38>
  • 경남매일
  • 승인 2011.08.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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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화 칠순잔치 -1-
글 : 임 상 현 / 그림 : 김 언 미 <38>

동출의 사회적 체면

아침부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와 단벌인 양복을 꺼내입은 아버지를 따라 민석은 집을 나섰다.

“엄마 도대체 뭔 일 인데예? 저도 꼭 가야 됩니꺼?”

“그럼 가봐야제. 나에겐 당숙모이니 너에게도 아주 가까운 친척의 칠순잔친데 가는기 도리지.”

엄마한테 물었는데 대답은 아버지가 하셨다. 어젯밤에 이 일을 놓고 민석은 부모님이 약간 옥신각신 하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 그렇게 푸대접을 받고도 꼭 가봐야겠습니꺼?”

“취직 때문에 그러는 모양인데 그 일과 이번 일은 별개지.”

“그래도 그렇지예. 당신이 몇 번씩이나 그곳을 찾았다문서요. 6촌 동생이 그렇게 부탁한 취직자리 딱 무시한 일이 억울치도 않습니꺼?”

“아 듣겠소 마 조용히 하소. 마음 같아선 딱 거절하고 싶더라만 그래도 고향사람 중엔 가장 가까운 친척 칠순인줄 알면서도 무시하기도 그렇더라고.”

“당신이 그렇게 당하고도 친척이라고 챙겨주는 마음을 그 사람들이 과연 알아주기나 할지….”

양례는 자신이 너무 반대만 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 때 남편이 지금은 유한부인이 되어있는 연숙과 맺어질 뻔도 했다. 연숙이 맨 처음 남편의 육촌형인 동호와 결혼할 때만 해도 아가씨 였던 그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런 저런 형편을 잘알고 있는 자신이 불과 얼마 뒤에 동출과 결혼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랐다. 양례는 육촌으로 단지 사촌정도의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회적 체면과 직업에 따라 양반 상놈으로 분류하는 시대는 끝이났다. 돈이 체면이 되고 벼슬이 되고 양반이 되는 시대로 변했다. 연숙의 부모님이 한 때 시장에서 고기를 팔아가며 천하게 돈을 모았든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을 천박하다고 사람 취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성장했든 이제는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체면을 다 구겨가며 그런 사람과 관련된 사람이 차린 곳에 취직자리를 구하러 다닐 때부터 연숙과 자신의 처지는 이미 결정된 것과 다름 없었다.

다닥다닥 붙은 자그만 집들이 있는 지대를 벗어나니 보기에도 웅장해 보이는 저택들이 서 있는 곳에서였다. 아버지는 앞장을 서서 가면서도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다.

“밤길에 종복이와 같이 한번 집 앞까지 다녀오긴 했었는데 낮에 보니 헷갈리네 그것 참. 아마 요 근처쯤 되었을낀데. 집들이 양옥이라 한결같이 모양새도 비슷하다 보니 이거 원 쯧쯧.”

동출만 믿고 따라온 터라 이제는 세 사람이 같이 헤매는 꼴이었다. 약 십여 분을 그곳 지대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어떤 집에서 음악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 맞다. 아마 저 집인 모양인 갑다.”

동출은 바로 그 집 앞으로 달려가 문패부터 확인했다.

“김동호 허허 제대로 찾아오긴 왔네.”

그러면서 그는 양복 안쪽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봉투를 꺼내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마도 이 부조금은 당신이 건네는 것이 모양새가 낫지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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