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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사회
법정스님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사회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0.03.14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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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구현에 써 달라”
무소유ㆍ소통ㆍ침묵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우리 모두의 몫
박재근
취재본부장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法頂)스님, 봄이 오는 언저리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몸을 맡긴 채 먼 길을 떠났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무소유’ 중에서) 법정스님하면 떠오르는 단어 ‘무소유’다. 법정스님이 설파한 무소유의 정신은 무한경쟁과 탐욕의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등불이다.

 법정스님은 고된 일상에 지친 일반인을 위로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불교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즉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없다는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법정(法頂ㆍ78)스님은 청빈의 도(道)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현한 종교인이었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일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구나” 법정(法頂) 스님이 “수십 번 읽었다”고 밝힌 ‘어린 왕자’에서 불교적 사생관(死生觀)을 발견하고 저서 ‘무소유’에 적은 글이다.
 이제 스님 스스로가 한 조각 구름이 흩어지듯 자연으로 돌아갔다.

 세월과 죽음을 어느 누가 막겠는가, 오는 봄을 제쳐가며 떠난 스님은 우리 가슴에 겨울바람을 불도록 했다. 그것도 지난해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을 잃은 상실의 부고(訃告)가 채가기도 전에 또 다시 ‘시대의 스승’으로 추앙받아온 법정 스님 입적(入寂)은 종교의 같고 다름을 떠나 국민 모두의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의 말과 글을 통한 가르침은 물론 삶 자체가 사회의 등불이었다. 평생에 걸쳐 무소유와 소통을 화두로 한 그의 정신과 삶을 새삼 되새기는 것도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도 그런 어른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후 3년 만에 다시 걸망을 짊어졌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박해를 받다 보니 증오심이 생기더라. 마음에 독(毒)을 품을 순 없어서 산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고는 ‘집착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가진 것을 하루 한 가지씩 버리는 삶을 살기로 다짐, 무소유의 길을 걸었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전날 밤에도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스님이 대중과 소통하게 된 것은 “해인사 시절 한 할머니가 대장경판에 대해 ‘아, 그 빨래판 같은 것에 불교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하고, 살아 있는 언어로 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또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맹목적인 수도생활에 선뜻 용해되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스님의 이런 원력은 스님의 이름과 동의어처럼 불리는 산문집 ‘무소유’의 모습으로 꽃을 피운다. 무소유는 1976년 4월 출간된 후 지금까지 34년간 180쇄를 찍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법정(法頂) 스님이 걸어온 56년 불가(佛家)의 길은 비우고 또 비운 무소유(無所有)의 삶 그 자체였다. 스님은 떠나는 길목에서도 행여 ‘내 것’이 남을까 저어하며 두루 꼼꼼히 살폈다. “세상 떠들썩하게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내가 즐겨 눕던 작은 대나무 침상에 뉘어 그대로 화장해 달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비우고 살아가기’의 아름다움을 깨우쳐 줬던 숱한 글들도 스님에겐 빚이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生)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된 책들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입적 직후 정진석 추기경 역시 대한불교조계종에 메시지를 보내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많은 위로와 사랑을 주셨던 법정 스님의 원적(圓寂)은 불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큰 슬픔”이라고 애도한 취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1997년 길상사 개원 법회 당시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 불자들에게 강론을 하게 했다. 또 그 자신이 명동성당을 찾아 천주교 신자들에게 사랑과 신뢰의 마음을 전하면서 법문을 한 일 등도 소통을 통한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가꾸어가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소욕지족(少慾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쳤다.

 무소유와 소통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난 한국사회는 소유욕과 불통(不通)으로 신음 중이다. 이 시대에 법정 스님이 뭇사람들에게 이른 ‘무소유’는 분수를 알고 욕망을 다스리라고 내리치는 죽비 소리였다.

 법정 스님은 13일 송광사 다비식을 끝으로 현생에서의 국민 곁을 떠났다. 생애 전반과 입적까지도 이 시대의 가르침으로 삼아 실천하는 과제는 모두의 몫이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언어는 공허하다”며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법정 스님, 이제 침묵과 자연 속에서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때이다.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박재근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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