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10:00 (월)
믿는 특허에 발등 찍힐라
믿는 특허에 발등 찍힐라
  • 경남매일
  • 승인 2023.10.2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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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예방장치 필요 없다'더니…급발진 방지 특허는 보유." 며칠 전 이런 제목의 뉴스가 방송에 나온다. '특허'라는 말에 조건반사적으로 귀를 기울이니, 자동차의 급발진에 관한 이야기다. 급발진이 기술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제조사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모순된 양면성을 지적한다. 문제가 없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까지 취득했다면, 차량 결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뉴스의 내용이나 제조사의 입장은 나름 주장과 반박의 논리가 있을 만한 사안이라, 그건 논외로 한다.

이 뉴스에서 주목할 점은 '제조물 책임(Product Liability)' 사안에 관련하여 '특허'를 거론하였다는 점이다. 매우 참신하고도 의미 있는 접근 방법이다. 급발진은 운전자의 뜻에 반해 차량이 급가속하여 달리는 현상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고가 있었고 매번 그 원인이 차량 결함인지 운전자 과실인지를 두고 다투어왔다. 원인이 차량 결함에 있다면 제조사가 책임을 져야 할 전형적인 '제조물 책임' 사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차량 결함임을 명쾌하게 밝혀 제조자의 책임을 입증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뉴스에서처럼 그들의 특허를 잘 참조하면 새로운 입증의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특허 출원은 반드시 명세서를 제출하는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며, 특허청은 그 서류를 기초로 특허 여부를 심사 결정한다. 명세서에는 발명의 구성뿐만 아니라 발명의 동기와 효과도 기재한다. 효과가 클수록 특허 가능성은 높고, 그 동기가 절실할수록 발명의 효과는 더 크게 부각될 것이다. 그래서 발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예를 들어 급발진 등의 문제를 강조하여 때론 다소 과장되게 기술하기도 한다. 그러니 명세서에서 제품의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기재가 있으면 회사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자인하는 모습이 된다.

즉 '고의'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고의'에 의한 제조물 책임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으로서, 제조자가 그 결함을 알고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에 대해, 손해의 3배까지 배상책임이 가중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특허가 자기 제품의 '문제'와 '고의'를 동시에 증명하는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허가 이적행위를 하는 꼴이다. 그런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 미국에 많이 팔린 야마하의 3륜구동 오프로드 차량(ATV)은, 무게 중심이 높고 두 후륜에는 일반 자동차와 달리 차동장치가 없다. 차동장치는 자동차가 코너링 주행을 할 때 양쪽 바퀴의 회전 속도를 다르게 하여 안정되고 안전한 선회가 가능하도록 한다. 그게 없는 ATV에서는 코너링 운전 자체가 힘들고 원심력에 의해 차체가 넘어지거나 운전자가 떨어지기 쉽다. 실제로 한 어린이가 코너링 중에 차에서 튕겨져 나와 얼굴을 크게 다쳤다. 이 사고의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로펌은 ATV의 코너링 불안정성을 들어 제조물 책임을 주장했다. 제조사인 야마하는 의례히 그 주장을 부정했다.

이에 그 로펌의 담당 변호사는 제조사가 차동장치가 없음으로 인한 문제를 필시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증거를 찾기 위해 고심하다 제조사의 특허를 검색한 것이다. 기발한 발상이었다. 그리고 그 조사에서 정말 쓸 만한 것을 찾아냈다. "종래의 ATV에서는 코너링에 종종 문제가 발생했다. 운전자가 충분히 숙련되지 않으면 코너링 시 바깥쪽으로 몸이 기울어질 수 있다. 이런 물리적 현상 때문에 운전자는 조작에 실패하거나 코너링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 그 회사의 한 특허에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로펌은 이 내용을 가지고, 그 ATV에 코너링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있었고, 또 그 사실을 회사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 특허에 언급된 내용은 놀이용이 아니라 유틸리티용에 대한 것이라고 다소 궁색한 반박을 하였다.

로펌은 한발 더 나아가 해당 특허출원을 담당한 변리사의 소환, 변리사와 회사 사이에서 오간 서신의 공개 등을 요구하였다. 그 요구는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특허청의 심사과정에 제출된 변리사의 진술은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진술 내용에서 회사의 반박 주장을 뒤집는 결정적인 내용을 나왔다. 결국 변리사의 진술 내용에 기초하여 제조사의 '제조물 책임'이 인정되었고, 피해자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특허 명세서의 내용과 심사과정에서의 변리사 진술이 '제조물 책임'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명세서 등의 기재나 진술은 발명자나 변리사에게 한정된 개인의 인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특허공보로서 일단 공개되고 나면, 그 내용은 특허권자인 제조사의 공식적인 인식이 되어버린다. 그 명료한 증거를 두고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명세서에는 제품의 구조, 작동 원리, 기대 성능 등에 대해 세부적으로 기재되므로, 자신의 기술 정보가 노출되는 위험도 있지만, 제품 결함이나 안전 문제의 증거를 찾는 타인에게는 풍부한 양질의 정보가 된다.

이처럼 특허는 적에게는 유용하면서 자신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기업과 변리사는 특허 출원 명세서의 작성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부러 거짓을 쓸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결과는 충분히 예측하여, 적어도 자신의 특허가 이적행위를 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믿는 특허에 발등을 찍혀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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