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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친구들 도와주고 싶고, 일자리 많으면 좋겠어요"
"스리랑카 친구들 도와주고 싶고, 일자리 많으면 좋겠어요"
  • 황원식 기자
  • 승인 2023.07.20 2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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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터뷰
요한 씨 (스리랑카 출신 이주민)

23년 한국 거주, 동포 통역 도와
외국인명예경찰대 10년 지역 봉사
김해시-경찰서 통역요원 활동
아내와 외국인거리서 마트 운영
"차별 있었지만 분위기 좋아져"
"다문화가정 서로 배려하면 화목"
스리랑카 출신 이주민 요한 씨는 아내와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김해지역에 온 스리랑카 사람들은 통역에 어려움이 있을 때 요한 씨를 찾는다.
스리랑카 출신 이주민 요한 씨는 아내와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김해지역에 온 스리랑카 사람들은 통역에 어려움이 있을 때 요한 씨를 찾는다.

보통 외국인들이 한국에 이주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한국어를 잘하고, 그 지역사정을 잘 아는 동포에게 연락을 한다고 한다. 요한 씨는 김해지역에 온 스리랑카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찾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김해지역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았고, 외국인근로자로도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경 김해중부경찰서 `외국인명예경찰대`를 취재할 때였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경찰과 함께 김해 동상동 일대를 순찰하며 취객을 도와주거나, 범죄를 예방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10년 넘게 봉사활동 중이라는 요한 씨는 유창한 한국말로 "호기심이 생겨서 경찰대에 가입을 했다"며 "범죄 예방도 하고, 운동도 하고, 여러 나라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를 알 수 있어서 좋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는 김해시, 경찰서에 통역요원으로 활동하면서 김해시 행정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요한 씨와 동상동 외국인거리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나 한국 정착기를 들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병원에 갈 때, 회사에서 갈등이 있을 때, 생활필수품이 필요할 때 등 다양한 일들로 연락이 옵니다. 그럴 때마다 직접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전화로 문제 해결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는 한번 인연을 맺은 같은 나라 출신 사람들과 자주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스리랑카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일거리가 많아지고,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고 소망했다.

현재 동상동 외국인거리에서 한국인 아내와 함께 스리랑카인 출신 사람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자리를 옮겨 그가 운영하는 마트로 이동했는데, 주로 스리랑카 사람들이 음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식재료, 과자, 쌀 외에도 다양한 생필품들을 팔고 있었다. 놀라웠던 사실은 마트가 있는 그 4층 상가가 요한 씨 가족 소유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건물주였다. 외국인 근로자로서 한국에 왔던 요한 씨가 어떻게 한국인 아내와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경제적 안정을 이뤘는지 그동안의 역사가 궁금했다.

요한 씨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23년 전이다. 지난 2000년 1월경 부산에 발을 디뎠던 그는 몇 달 지나지 않아 곧바로 김해로 이사했다. 그는 김해 한림면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면서 한국생활에 잘 적응했고, 한국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고 한다. 특히 그는 뛰어난 한국어 실력으로 회사에서 `통역`을 도맡았다고 한다. 어떻게 언어가 빨리 늘었냐는 질문에는 "저는 한국어를 좋아했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면서 빨리 늘었습니다"고 답했다.

그가 아내를 만난 것도 그 2005년경이었다.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던 아내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남편은 다른 회사에서도 스리랑카 사람과 소통에 문제가 있으면 공장장이 데리러 올 정도로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었어요. 또한 스리랑카 출신 동생들을 잘 이끌었고 리더십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동료들이 회사와 갈등이 있을 때, 그들 나라 입장에서만 대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면서 회사와 타협점을 찾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그리고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귀여웠어요. 잘생겨서 회사에서 인기가 많았죠. (웃음)" 요한 씨는 최근까지도 그 당시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한국 사람들에게까지도 연락이 오고 있어 그의 친화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요한 씨가 고향 음식을 먹기 위해 다른 지역을 찾았다가 김해에는 스리랑카 음식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식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회사를 나와 지금의 아내와 함께 지난 2007년께 진영에서 식당을 시작해 2010년경에는 동상동으로 옮겨 일을 이어갔다.

(아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지금보다 소비가 활발했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문화가 있어서 생일파티를 우리 가게에서 많이 했어요. 또 지금처럼 김해에 식당이 많지 않았고, 또 남편이 인지도가 있어서 저희 가게에 손님들이 많았어요. 그때 번 돈으로 지금의 상가도 살 수 있었죠."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추억은 일한 것밖에 생각이 안 난다"라는 부부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새벽까지 이어지는 주방 일을 직접 하면서 몸에 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8년 넘게 하던 식당을 과감히 그만두고, 현재의 자리에서 마트 운영만 하기로 했다. "지금은 건강을 챙겨가면서 쉬엄쉬엄 장사하고 있어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들이 부동산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과거에 겪은 차별과도 상관이 있었다. "당시 외국손님들이 주로 온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어요. 주차문제라든지 한국인이었다면 겪지 않았을 서러움을 겪다 보니 돈을 빨리 모아서 우리 건물에서 장사를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었죠." 그래도 현재 분위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금도 선주민과 외국인들 사이에 다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보다 훨씬 사람들이 친절하고 분위기도 많이 좋아졌어요."

이들 부부는 즐겁게 대화하며 화목하게 보였다. (아내) "제가 살아오면서 문화가 달라서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어요. 다만 다문화가정의 경우, 음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부분도 좋아하는 각자 음식을 조금씩 해서 먹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서로 배려하면서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요한 씨는 한국 영주권자로 있으면서 귀화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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