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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금빛 격랑 <219>
제13화 금빛 격랑 <219>
  • 서휘산
  • 승인 2013.09.10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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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금빛 격랑 (10)
 “…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직자들의 부조리와 비리를 일소하도록 계획을 세워 보더라고.”

 대통령이 의지 어린 입술을 꽉 다물고 감우성을 노려보았다.

 “국민 여러분!”

 감우성도 그를 만만찮게 노려보았다.

 “아따 뭐가 그리 반갑다고 불러싼단가 이.” 대통령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시점은 우리 국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화해와 용서의 마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여?”

 감우성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그러자 대통령이 얼른 대답했다.

 “그러니까 제 말씀은,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이양을 받은 저희 정부를 믿고.”

 “아 믿을 수 있게 해야 믿을 거 아닌가?”

 “이제 더 이상, 온통 배신과 음모로 점철돼 있는 나팔호 같은 공직자는 저희 국민의 정부에서는 발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을, 국민여러분께 확신 드리는 바입니다.”

 “확신 겉은 소리허고 있네. 사람이나 잘 써 이 사람아. 똥구멍이나 핥으며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들만 쓰지 말고.”

 대통령이 불끈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의 성명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국민 여러분. 우리 국민은 하늘의 자손입니다. 본 사건이 비록 불행한 사건이나 더 이상 좀스럽게 연연하지 맙시다.”

 “니 새끼나 니가 당했어도 그렇게 말할 꺼여?”

 여전히 못마땅한 감우성의 말투다.

 “아무쪼록 허공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변함없이 전진합시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지랄누메!”

 감우성이 내뱉고 점잖게 타일렀다.

 “앞으로 국민헌테 사과 헐일이나 없도록 잘 혀. 아 그 잘난 김문삼이는 대국민 사과를 몇 번이나 했는디……. 뻔질나게 국민한테 사과허다가 볼짱 다 봤다는 거 잘 알잖여?”

 그러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정태수가 나섰다.

 “씨발놈들 다 한통속이지 뭐. 주둥이만 살아있는 정치허는 놈들 말을 어디 믿을 수가 있간디.”

 “괜히 씨잘데 없는 말 듣느라고 뉴스만 못 봤잖아.”

 맨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로부터 한동안…….

 정 중 동 (靜 中 動)

 아무 일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나날이 지났다.

 정일육의 졸개들이 백지한과 수련의 행방을 쫓아 혈안이 되어있었지만 그 나날들은 평화롭기만 했다. 뭔가 움직임을 보일 것처럼 꿈틀대던 청와대와 안기부도 잠잠했다.

 구름을 낀 검은 섬 사이로 느릿느릿 미끄러져 다니는 고깃배들은 무지개마을에서만 느낄 법한 정겹고도 순수한 맛이었다.

 아카시아꽃이 만개하여 그 향내를 맘껏 풍기는 바닷가에서 수련은 점차 안식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팔호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수련이 쉬고 싶어한 곳이 이곳 무지개마을이었다.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그녀의 작은 집에서 백지한과 함께 보낸 지도 벌써 보름.

 모처럼 해변으로 내려온 수련은 그 해변에서 뒹굴고 있는 까만 몽돌밭을 거닐며 바닷가 이곳저곳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파도를 몰아오는 바닷정취는 늦은 봄의 생동감으로 용솟음치고 있었다. 갯내음과 함께 새싹들이 풍기는 향취도 부드럽다.

 “……!”

 자연에 매료되었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한곳에서 얼어붙었다. 그녀는 그 순간 솟구치는 기쁨의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녀 자신도 모르게 눈은 빛나고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녀의 불타는 시선이 맞닿은 곳에 백지한이 앉아있었던 것이다.

 백지한의 얼굴은 은빛으로 출렁이는 남해의 격랑이 찬란히 반사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제 어디서나 행복의 샘에서 넘쳐나는 희열이 격랑과도 같이 그녀의 가슴으로 몰려오곤 했다.

 그런데…….

 이제 사악한 악마와 싸워 이기고 다시 보는 그 얼굴은 눈물겹도록 정겨웠지만, 그들 사이엔 긴 침묵만이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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