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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금빛 격랑 <216>
제13화 금빛 격랑 <216>
  • 서휘산
  • 승인 2013.09.05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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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금빛 격랑 (7)
 “……!”

 “……!”

 하태성의 가슴이 얼어붙었고, 이성채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없는 자에게만 가혹하고, 힘있고 가진 자들에게는 오히려 도피처요, 면죄부를 주는 곳 아니냔 말이오?”

 하태성은 대답대신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은 형형한 눈빛으로 그의 정수리께 곱슬머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분기 넘치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 검찰도 이젠 성역 없는 수사로 추앙 받고 있는 일본 동경지검 특수부를 본받을 때가 왔어요.”

 “……?”

 하태성이 고개를 들었다.

 “정치권하고 재벌들 눈치보느라 사팔뜨기가 되기 전에.”

 대답 없는 하태성의 이마에서 마른땀이 흘려내렸다.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가슴을 향해 수술용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도쿄지검 특수부는 한국의 검찰로선 상상도 못할 존재로 자리잡고 있었다. 아시다 히토시 전 총리를 체포하게된 ‘쇼와덴코’ 비리사건을 계기로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후 일본 정ㆍ관계의 대형 비리와 경제사건을 전담해 왔다. 9174년 의 록히드 사건, 9187년의 리쿠르트 사건, 9191년의 제네콘 사건, 그리고 근래의 노무라 증권 총회꾼 사건 등은 도쿄지검 특수부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검찰은 어떠한가? 하태성을 사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위권력층의 눈치만 보며 중심 없는 불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하총장.”

 “예. 각하.”

 “록히드 사건에서 재판을 받았던 기업인 오사노 겐지는, 전후 일본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바로 그 도쿄지검 특수부 덕분이라고 토로한 바 있어요.”

 “예. 알고 있습니다. 각하.”

 “그러니 잘 좀 해주시오.”그리고 대통령은 시선을 이성채에게로 돌렸다.

 “안기부에선 백지한씨가 나팔호한테 그렇게 당하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각하.”

 대통령이 다시 곱슬머리의 하태성을 보았다. 그의 미간이 약간 좁혀져 있었다.

 “지난번 테러사건 때 철저히 수사를 했어야지.”

 이성채가 대신 대답했다.

 “그 땐 백사장 본인이 수사를 원하지 않았답니다.”

 “왜?”

 “그건 본인 얘기를 들어봐야 알겠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머리를 저으며 허탈해 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말이야…….”

 “…….”

 이성채가 어금니를 문채 고개를 숙였고, 하태성은 길게 숨을 뱉았다. 이윽고 대통령이 하태성을 보았다.

 “하총장.”

 “예. 각하.”

 “언론의 보도로는 나팔호가 지금까지 그렇게 빨리 클 수 있었던건 그 주위에 비호세력이 있다고 하는데…….”

 “저희 수사망을 총 동원해 파헤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그리고 요즘 절도와 강도, 그리고 사기범들이 많이 늘어 교도소가 포화상태라면서요?”

 “예. 각하 송구스럽게도 그렇습니다.”

 하태성은 먹구름이 잔뜩 낀 대통령의 얼굴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오히려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어쩔 수 없겠지. 이 난국에……. 예로부터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면 도둑과 도적이 들끓었으니까…….”

 안기부장이 조심스럽게 대통령을 거들었다.

 “도토리를 먹고살던 다람쥐도 먹이가 떨어지면 쉬리도 잡아먹고 산토끼와 영역싸움도 벌이는 법입니다.”

 그 비장미로 넘치는 적절한 비유에 무거운 정적이 집무실 안을 흘렀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허공을 바라보던 대통령이 두 사람을 둘러보다 이윽고 하태성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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