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호

2013-07-02     김루어
 여름은 일하기 힘든 계절이다. 날씨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일이라는 데에 생활인들의 비애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직장인이라면 한 달을 못 넘겨 사직서를 써야 할 것이고, 자영업자라면 일정한 손실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머뭇거리면 바로 뒤처질 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대, 자고 나면 눈썹까지 치떠야 하는 지금과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런 만용을 부릴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네는 존경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나는, 첫 직업이 평생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직업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고 말하는 교과서 기술자들의 말을 반사적으로 되새기게 된다. 그네들 말씀을 기억나는 대로 옮겨 본다. 첫째, 일이 적성에 맞아야 한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일이 즐겁지 않고, 일이 즐겁지 않으면 오래 계속할 수가 없다. 둘째, 생활을 보장해줄 정도의 보수는 담보되는 일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일에 보람을 느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그네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든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이는 원칙론 아니,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직업을 갖는 이는 아주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업을 갖지 않을 수는 없다. 일하지 않으면 소득이 없을 것이고, 소득이 없으면, 생존이 위협을 받을 것이기에. 물론,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 직장을 구하는데 여유가 있는 계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가진 이는 드물다. 그래서, 전술한 조건에서 일정한 타협을 하여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타협과 선택을 한다는 말은,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인정하여 현실을 수용한다는 뜻일 터이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점은, 타협과 선택이 기준위로 갈수록 정신노동에 가까운 직업이 되고, 기준아래로 갈수록 육체노동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기준자체가 플라톤 이래의 깊고 오래된 편견에 뿌리를 둔 이원론을 직업관에 투영시킨, 세로축은 없고 가로축만 있는 좌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좌표에 발을 딛는 이는 누구나 자신의 위상에 따른 평가를 누리거나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현실에서는 이 위상 차이를 근거로 직업은 귀천으로 분류되고, 그 분류는 제대로 된 비판없이 관습적으로 통용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현실을 지배하는 이런 이원론적인 직업관의 잣대는 온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과 육체는 상하나 고저로 나뉘어 질 수 있거나, 우열로 평가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은 육체안에 깃들어 있고 육체는 정신을 감싸고 있다. 정신과 육체는 안과 밖의 관계일 뿐이다. 이를 노동에 적용하면, 사람은 정신만으로, 혹은 육체만으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쪽을 더 많이 쓰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정신과 육체 양쪽을 다 쓴다.
 육체를 많이 쓰는 노동 가운데 하나는 아마 농삿일일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가까운 문우네 농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기껏 하루 일하고 이틀이나 몸살로 드러누웠다. 나 자신의 태타(怠惰)한 일상이 많이 부끄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네들 부부가 안쓰러웠다. 왜냐하면, 일년 내내 쉬는 날 없다시피 땀을 흘린 그네들 노동에 대한 보상이 너무나 초라했던 것이다. 20년 이상을 농사를 짓는 동안 그네들은 딱 한 번 재미를 보았을 뿐 매년 현상유지에 급급해왔다고 한다. 이런 실정은 그네들의 경우만이 아니라 농촌의 일반 현황이라고 했다.
 부가가치의 차이니 협상가격차니 하는, 학생시절에 들은 지식으로 농산물이 공산물과 부등가(不等價)로 교환된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현실이 그 정도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내게는 그네들 말은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또 다른 충격은, 사람들이 땀흘리는 일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도리없이, 일손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쓴다는 사실이었다. 며칠 전, 한중 FTA가 급물살을 탈 것 같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중 FTA가 체결되면, 가장 타격을 입게 될 농촌에 대한 심층분석 기사가 언론에 드물다는 점이다.
   중국 농산물은 우리 농산물에 비해 가격이 절대 비교우위에 있다. 게다가, 산동반도에서 중국농산물이 선적되면 하루 안에 우리식탁에 오를 수 있다하니 우리 농업에 입힐 타격이 눈에 보이는듯하다. 아마, 정부당국도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고 있겠지만 좀더 전향적인 자세로, 농업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부족불(不足弗 : deficiency payment)이나 최저가격 보장같은 제도 도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도 가격이 떨어진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수입 농산물들의 질과 안전성에 대한 불안은 날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전문가그룹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는 소프트웨어 산업기로 진입했다고 한다. 몇몇 돋보이는 산업의 흥성만으로 볼 때 공감되는 바 있는 말이지만, 그 속뜻이 일차산업은 버리고 되는 산업에 하중을 모두 싣자는 뜻이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하드웨어없이 소프트웨어가 장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동력까지 수입되는 시대에 웬 잠꼬대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논리대로 하자면, 일차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이 땅을 떠나거나 죽어야 한다. 경제보다 사람이 먼저다. 이 원칙하에, 육체적으로 땀흘리는 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아쉬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