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4 05:51 (토)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
  • 경남매일
  • 승인 2024.07.09 22:26
  • 댓글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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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2024-07-16 11:18:34
강수는 성이 없어 ‘本任那加良人’이라 답변하였습니다. 무열왕은 강수를 ‘任生’이라 부릅니다. 이헌동님이나 제가 ‘李生’이라 불리는 것과 같습니다. 조선시대 전적을 보면 ‘任强首’라 한 것이 더러 보입니다. 그렇다고 강수가 임씨인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本任那加良人’은 성을 대체할 만한 표현인 점은 인정이 됩니다.
‘본(本)’을 본관제와 연결지어 이해하는 것은 강수의 시대와 맞지 않습니다. 무열왕 시절 신라는 왕족과 일부 진골만 성씨가 있었습니다.
성씨와 특정 지역이 묶여서 사용된 시기는 고려 건국 이후 태조 왕건이 ‘토성 분정’을 한 다음입니다.

이형우 2024-07-16 11:08:00
열전 강수전에서 <석체>는 처음 등장할 때도 <석체>로 표기하고 그 다음에 등장할 때도 <석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석체>가 온전히 명(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강수가 석씨였다면 응당 다음과 같이 표기해야 맞습니다.

昔强首 中原京 沙梁人也 父諦奈麻
석강수는 중원경 사량 사람이다. 부는 체 나마이다.

혹은

强首 姓昔氏 中原京 沙梁人也 父諦奈麻
강수는 성이 석씨이고 중원경 사량 사람이다. 부는 체 나마이다.

그런데 강수 열전은

强首 中原京 沙梁人也 父昔諦奈麻
강수는 중원경 사량 사람이다. 부는 석체 나마이다.

강수는 석씨가 아니고 부는 이름이 체가 아니라 석체입니다.

이형우 2024-07-16 11:06:20
삼국사기 열전 석우로전 원문입니다.

昔于老 奈觧尼師今之子 助賁王二年七月 以伊湌爲大將軍 出討甘文國破之 以其地爲郡縣
四年 七月 倭人來侵 于老逆戰於沙道 乗風縱火 焚賊戰艦 賊溺死且盡

석우로는 처음 등장할 때는 <昔于老>라고 성과 명을 다 표기하였지만 그 다음에 등장할 때는 성은 생략하고 그냥 <于老>라고 명(이름)만 표기하고 있습니다.

최치원 열전 원문입니다.

崔致逺 字孤雲 [或云海雲] 王京 沙梁部人也 史傳泯滅 不知其丗系
致逺少精敏好學 至年十二 將隨海舶入唐求學

최치원도 처음에는 '최치원'이라 표기하다가 다음에는 성을 빼고 '치원'이라고만 합니다. 삼국사기 열전은 모두 같습니다. 이는 전통시대의 일반적인 한문 작성 원리입니다.

이형우 2024-07-16 11:01:20
이헌동님의 글에 나오는 내용은 이덕일과 그 친구들의 말과 글에서 나온 것임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만약 이덕일이 <일본서기>를 한번만이라도 읽어보았다면 그와 같은 엉터리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이덕일은 <일본서기>를 잘 모릅니다. 이헌동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분별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이형우 2024-07-16 10:58:49
<일본서기> 추고기 31년(623) 11월 기사입니다

“처음에 반금 등이 신라에 건너가던 날, 배가 항구에 도착하였을 때, 장식한 배 1척이 해변에서 영접하였다. 반금이 “이 배는 어느 나라의 영접선인가?”라고 물으니, “신라의 배다.”라고 대답하였다. 반금은 또 “어찌하여 임나의 영접선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즉시 임나의 배 1척이 왔다. 신라가 영접선을 2척 준비하는 것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한다.”

반금은 일본에서 신라에 보낸 사신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 임나의 배도 신라가 준비합니다. 앞선 기사에서 임나 사신이 실은 신라 왕경에 거주하는 임나(가야) 출신이거나 후손들일 거라고 했습니다.

<일본서기>를 읽어보면 그 임나는 실은 신라에 복속된 임나=가야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