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0 13:06 (금)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
  • 경남매일
  • 승인 2024.07.09 22:26
  • 댓글 7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7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형우 2024-07-18 06:20:16
외자 이름의 사례는 설총이나 김양 등이 있습니다. 석체는 외자 이름의 사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석체의 경우 “성은 석이고 이름은 체라는 외자 이름”이 아니라 ‘석체’ 자체가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열전 인명 기재 방식의 사례를 보여 드렸습니다.

이형우 2024-07-18 06:18:20
강수가 석씨라면 왕족인데 무열왕이 어찌 몰라 보겠는가에 대해 이헌동님은 “충분히 모를수 있지요. 조분왕의 13대 후손인 강수를 왕족으로 알아볼까요? 몇 백년 전에 조상이 왕이었던 후손을 다 알 수 있나요.”하고 모를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헌동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모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럴 가능성보다는 알아보아야 할 필연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이처럼 몰라 보았다면 강수는 석탈해의 후손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방증이 되는 겁니다.
강수가 자신을 ‘본래 임나 가량 사람’이라고 답변한 데서 이미 강수는 신라 왕족 석씨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강수 열전을 거듭 읽어보아도 강수가 신라 왕족 석씨라는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형우 2024-07-18 06:08:30
무열왕이 강수에게 성명을 물었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무열왕이 강수 성명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에 맞습니다. 이것을 어째서 ‘상식을 벗어난 글자 해석’이라 하시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처음에 이헌동님이 무열왕이 강수가 석씨임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근거 없이 말씀하시기에 무열왕이 강수를 이렇게 늦게 만남을 한탄하였으니 무열왕은 강수의 성을 성을 몰랐다고 본다고 반론으로 말한 것일 뿐입니다. 이게 어떻게 ‘아전인수격인 주관적인 판단’이 되는지 이 또한 의아하기만 합니다.

이헌동 2024-07-18 02:26:37
"신라 시대에 외자 이름이 있으니, 성이 석이고 이름이 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석체를 묶어서 이름으로 조선총독부에서 교육하였는데,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성은 석이고 이름은 체라는 외자 이름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이지 근거로서 이야기 한 것이 아닌데.

앞에 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이것을 가지고 근거니 뭐니 따지면서 두 자 이름이 더 많다는 식으로 펴는 것이 서로 시비거리가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드네요.

이헌동 2024-07-18 02:15:52
이형우님이 임나 가야설에 목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집니다.

562년 대가야가 멸망한 뒤인 <일본서기> '646년 대화 2년' 조에 "고구려, 백제, 임나, 신라가 나란히 사신을 보내 세금을 바쳤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임나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가야가 임나가 맞나요?

이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에 세금을 냈을까요?

상식적인 판단을 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