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0 05:41 (금)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
  • 경남매일
  • 승인 2024.07.09 22:26
  • 댓글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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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2024-07-18 07:23:31
역사학은 사료 ‘기록에 있는 대로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료도 검증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일본서기>는 비록 정사이긴 하지만 내용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 사료비판합니다. 그 다음으로 내용에 대한 비판적 검증을 합니다. 한국학자든 일본학자든 역사학자는 누구나 다 사료비판을 반드시 합니다.
일본서기 편찬 당시의 대외관계에 대한 관념, 주변국을 속국=번국으로 간주하는 관념으로 왜곡 윤색되어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는 읽을 때 일본 중심의 관념을 걷어내고 보아야 합니다.
일본은 이런 관념이 유난히 심한 나라입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통신사도 조공 사신으로 왜곡하였습니다. 학봉 김성일의 사행 기록을 보면 그 때문에 분쟁도 일어납니다.

이형우 2024-07-18 07:15:58
(二年) 二月甲午朔戊申 …… 高麗·百濟·任那·新羅 竝遣使 貢獻調賦

<일본서기> 효덕기 대화 2년(646)조에 “고구려, 백제, 임나, 신라가 나란히 사신을 보내 세금을 바쳤다”는 기사에 등장하는 임나가 무엇인가? 우리나라 가야가 맞나?
이헌동님이 물었습니다.

임나=가야 멸망 이후에도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의 정체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추고기 18년(610) 7월 기사, 추고기 19년(611) 8월 기사, 추고기 31년(623) 11월 기사를 들어 신라에 복속된 옛 임나=가야 지역을 가리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헌동님이 다시 묻습니다.
“이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에 세금을 냈을까요?” 훌륭한 시빗거리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의 통치를 받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세금[調賦]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일본서기>의 일본 중심의 필법임을 감안하고 보아야 합니다.

이형우 2024-07-18 06:50:49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에서 사례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강수는 임씨도 아닙니다. 태종무열왕이 강수를 ‘임생’이라 한 것은 ‘본래 임나가량인’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형우 2024-07-18 06:44:48
<동아일보> 1933년 9월 1일자에 <아동독본> 제1과 ‘강수 선생 이야기’를 이은상(1903~1982)이 썼습니다. 그 중 성씨와 관련 있는 대목을 옮겨 봅니다.

“신라에서는 문장가를 치되 임강수(任强首)라는 이를 으뜸이라 하였습니다. (중략) 그는 중원경 사량 -지금 충주- 사람인데 내마(奈麻) 벼슬로 있던 석체(昔諦)라는 이의 아들입니다. (중략) 태종대왕이 선생을 불러보시고 ‘억센 머리’란 뜻으로 강수 선생이라 하시었더니 그 뒤로 세상이 다 ‘강수 선생’ ‘강수 선생’하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중략) 나라에 큰 공이 있는 어른이라 임금께서도 늘 그 성(姓)을 부르시고 이름은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강수를 석씨라고 한 사례는 없습니다. 오히려 임씨라고 한 사례가 많습니다.

이형우 2024-07-18 06:41:31
조선총독부에서 국사보충교재에서부터 강수의 아버지 ‘석체’에 대해 ‘성이 석이고 이름이 체라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석체를 묶어서 이름으로’ 가르쳤다. 왜냐하면 강수가 석탈해 후손이 되면 임나가량이 가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헌동님의 말입니다.

님이 말한 ‘국사보충교재’는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 교수참고서>를 말함인 듯합니다.
<심상소학국사>의 국사는 일본 역사이고,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가 조선 역사임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교사용지도서가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 교수참고서>입니다.
<교수 참고서>는 단원별로 ‘교수 요지’, ‘설화 요령’, 주의, 비고의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책 1단원 상고시대의 조선반도, 비고에 강수와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臣本任那加良人’만 나올 뿐, 강수의 아버지 석체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이헌동님의 생각은 지나친 억측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