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은 사료 ‘기록에 있는 대로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료도 검증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일본서기>는 비록 정사이긴 하지만 내용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 사료비판합니다. 그 다음으로 내용에 대한 비판적 검증을 합니다. 한국학자든 일본학자든 역사학자는 누구나 다 사료비판을 반드시 합니다.
일본서기 편찬 당시의 대외관계에 대한 관념, 주변국을 속국=번국으로 간주하는 관념으로 왜곡 윤색되어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는 읽을 때 일본 중심의 관념을 걷어내고 보아야 합니다.
일본은 이런 관념이 유난히 심한 나라입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통신사도 조공 사신으로 왜곡하였습니다. 학봉 김성일의 사행 기록을 보면 그 때문에 분쟁도 일어납니다.
<동아일보> 1933년 9월 1일자에 <아동독본> 제1과 ‘강수 선생 이야기’를 이은상(1903~1982)이 썼습니다. 그 중 성씨와 관련 있는 대목을 옮겨 봅니다.
“신라에서는 문장가를 치되 임강수(任强首)라는 이를 으뜸이라 하였습니다. (중략) 그는 중원경 사량 -지금 충주- 사람인데 내마(奈麻) 벼슬로 있던 석체(昔諦)라는 이의 아들입니다. (중략) 태종대왕이 선생을 불러보시고 ‘억센 머리’란 뜻으로 강수 선생이라 하시었더니 그 뒤로 세상이 다 ‘강수 선생’ ‘강수 선생’하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중략) 나라에 큰 공이 있는 어른이라 임금께서도 늘 그 성(姓)을 부르시고 이름은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국사보충교재에서부터 강수의 아버지 ‘석체’에 대해 ‘성이 석이고 이름이 체라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석체를 묶어서 이름으로’ 가르쳤다. 왜냐하면 강수가 석탈해 후손이 되면 임나가량이 가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헌동님의 말입니다.
님이 말한 ‘국사보충교재’는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 교수참고서>를 말함인 듯합니다.
<심상소학국사>의 국사는 일본 역사이고,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가 조선 역사임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교사용지도서가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 교수참고서>입니다.
<교수 참고서>는 단원별로 ‘교수 요지’, ‘설화 요령’, 주의, 비고의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책 1단원 상고시대의 조선반도, 비고에 강수와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臣本任那加良人’만 나올 뿐, 강수의 아버지 석체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일본서기 편찬 당시의 대외관계에 대한 관념, 주변국을 속국=번국으로 간주하는 관념으로 왜곡 윤색되어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는 읽을 때 일본 중심의 관념을 걷어내고 보아야 합니다.
일본은 이런 관념이 유난히 심한 나라입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통신사도 조공 사신으로 왜곡하였습니다. 학봉 김성일의 사행 기록을 보면 그 때문에 분쟁도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