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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백자요지’·‘수정당’ 道 문화재 지정
하동 ‘백자요지’·‘수정당’ 道 문화재 지정
  • 승인 2007.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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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15일 도 기념물 265호·문화재 자료 423호 각각 지정 밝혀
백자요지 출토유물
하동군은 조선의 자기소 ‘하동 서황리 백자요지(河東西黃里白磁窯地)’와 선비문화의 정수 ‘하동 북방리 수정당(河東北芳里守正堂)’이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됐다고 15일 밝혔다.

도 기념물 265호로 지정된 하동 서황리 백자요지(河東西黃里白磁窯地)는 조선후기 18~19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북천면 서황리 232번지(1필지 2,093㎡)에 위치해 접시, 잔, 제기, 발 등 다양한 종류의 백자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지방소재의 가마터로는 그 규모가 큰 편이다.

자기 태토(殆土)는 치밀하며 유색(釉色)은 회백색(灰白色)을 띤다.

또한 굵은 빙렬이 있는 그릇의 안바닥과 굽은 접지면에는 ‘눈박이사기’라 할 정도로 12~13개의 내화토비짐을 받쳐 포개 구웠다.

특히 그릇을 받쳤던 경사진 도지미가 바닥에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어 당시 조성된 가마의 형태가 잘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백련리도지요(경남도 기념물 제24호)’를 비롯한 주변지역 가마터와 연관시켜 임진왜란 이후 경남지역 도자기문화의 현상과 발전과정에 대한 중요한 연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옥종면 북방리 571, 571-1번지(4동, 1,534㎡)에 위치한 문화재 자료 423호로 지정된 ‘하동 북방리 수정당(河東北芳里守正堂)’은 910년 덕원서원에 남명 조식 선생과 수우당 최영경선생의 복향론이 거론될 때 수우당 선생의 신원(伸寃)에 기여한 석정 정홍조선생과 함께 모셔야 한다는 진양정씨 문중의 의견으로 사림에서 허가해 1917년에 건립 됐다.

옥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다고 해 옥동서원(玉東書院)이라 불리었고 수정당은 지역 유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던 강학공간으로 이용됐다. 존덕사에는 수우당 최영경선생(1529~1590)과 석정 정홍조선생(1534~1590)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수정당에 모셔진 수우당 최영경선생과 석정 정홍조선생은 1589년 정여립의 역모사건에 연루된 기축옥사와 관련된 인물이다. 수우당선생은 남명 조식선생의 제자로서 옥중에서 “학문은 경의를 으뜸으로 했고 기상은 직방을 키우도다. 덕을 높이고 바른 것을 지켰으니 백세가 되도록 더욱 빛나리로다”라고 상향문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임종했다.

또한 석정 정홍조선생도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절조(節操)와 강당(剛斷)으로 불의에 항거했다.

따라서 수정당은 일제강점기의 혼란 중에서도 민족정신의 고취 및 자주적 정신문화 계승을 위해 건립된 건축물로 불의에 항거한 참선비상을 보여주는 인물을 모셔 산 교육장으로 활용이 가능하고 조선후기와 근대초기의 건축양식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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