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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해외영화제 도전사 큰 획 그었다
전도연, 해외영화제 도전사 큰 획 그었다
  • 승인 2007.05.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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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차지함으로써 한국 여배우들의 해외 영화제 도전사에 또 하나의 큰 획을 그었다.

한국 영화계가 해외 영화제에서 숱한 수상 기록을 쌓을 수 있었던 데는 물론 감독의 공이 적지 않았지만 여배우들의 활약상도 돋보였다. 특히 남자배우에 비해서는 월등히 좋은 성적을 올려 여성 파워를 과시했다.

여기에는 동양 여배우들에 대한 서양 심사위원들의 오리엔탈리즘이 깔려 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한국 여성 특유의 혼신을 다한 열정과 빼어난 연기력이 큰 몫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여배우 가운데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첫 낭보를 전한 인물은 강수연. 그는 87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쥠으로써 세계 영화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는 89년에도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당시 칸ㆍ베니스ㆍ베를린과 함께 4대 영화제로 꼽히던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월드스타로 확실히 자리를 굳혔다.

강수연에 이어 1988년 신혜수가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로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고 91년에는 이혜숙이 같은 영화제에서 장길수 감독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바통을 받았다. 이에 앞서 90년에는 심혜진이 낭트 영화제에서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으로 여우주연상에 뽑혔다.

93년에는 상하이 영화제에서 오정해가 ‘서편제’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음으로써 임권택 감독은 강수연, 신혜수, 오정해 등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 제조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94년 최명길이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으로 낭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을 끝으로 한동안 잠잠하던 여우주연상 수상 행진은 2001년 김호정에 이르러 재개됐다.

김호정은 문승욱 감독의 ‘나비’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에 해당하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같은 해 김기덕 감독의 ‘섬’에 출연한 서정이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을 전했고 이듬해 장진영이 윤종찬 감독의 ‘소름’으로 같은 영화제에서 수상 기록을 추가했다.

문소리는 2002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가 그해 신설한 신인배우상을 받은 데 이어 2003년 ‘바람난 가족’으로 스톡홀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원조 월드스타 강수연에 이어 월드스타 반열에 올랐다.

2004년에는 임수정이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으로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에서, 2005년에는 이영애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로 시체스 영화제에서 각각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올해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에서 마침내 전도연이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이에 반해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배우는 93년 윤삼육 감독의 ‘살어리랏다’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덕화를 비롯해 2000년 도빌 아시아영화제의 박중훈(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005년 뉴몬트리올 영화제의 아역배우 박지빈(임태영 감독의 ‘안녕, 형아’), 2007년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의 하정우(김기덕 감독의 ‘시간’)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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