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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 곽종석 선생
이달의 독립운동가 곽종석 선생
  • 승인 2006.06.0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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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국권회복.조국독립 헌신 선정
국가보훈처는 광복회와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곽종석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지닌딜31일 보훈처에 따르면 선생은 1846년 산청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한 재주를 바탕으로 성리학을 수학해 탁월한 데가 있었다. 이어 영남의 대유학자이자 주리론의 대통을 이은 한주 이진상의 가르침을 받고 퇴계학을 계승, 한말 유림을 대표하는 유학자 가운데 한 분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전통 성리학자로만 머물지 않았다. 서양 철학과 과학을 이해하면서 만국공법, 즉 국제법에 의거해 침략세력을 심판할 것을 주장하는 선진적인 사고와 인식을 겸비한 민족지성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1896년 각국 공사관에 ‘천하포고문’을 보내 갑오왜란 이후 명성황후 시해만행, 단발령 강요 등 일제의 침략만행을 맹렬히 규탄했다.
나아가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해 국권을 강탈하자 이에 대한 반대투쟁을 폈다. 매국적을 처단하고, 조약을 철회하며, 국제법에 의거해 일본의 죄상을 전세계에 널리 알릴 것 등을 주장하는 상소투쟁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자 토지를 매각하여 의연금을 보내는 등 이에 적극 동참했다.
특히 1919년 3?운동이 일어나자 영남 유림을 이끌고 호서유림과 연합해 파리장서운동을 전개했다. 유림 대표로 독립청원서를 작성한 뒤, 상해로 김창숙을 파견해 파리강화회의로 보내는 한편 영어.불어.중국어 등으로 번역해 각국 공사관 및 언론기관에 보냄으로써 한국민족의 자주의지와 독립결의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것이다.
이로 인해 일경에 피체되었지만 재판정에서 일본인 검사가 “독립이 반드시 이루어질지 알지 못하면서 연로한 사람으로 어찌 경거망동하였는가”라고 질책하자 “국민이 되어 국민된 의무를 했는데 망동했다고 하느냐”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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