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정통 법맥 계승...교육 관심 커
"AI 이점 있어…단점 많아 '쉼' 필요
"청년실업 안타까워 사회 책임져야"
판각 전문 학교 설립 구상 월급 지급
"진정성 가진 판각 인재 길러내야"
▶ 합천 해인사를 가다
늦여름이 이어지는 탓인지 10월 중순에 접어들었음에도 합천 해인사의 명물 가야산 단풍은 관람객을 반기지 않았다.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녹림이 푸르른 빛을 발하며 합천에 발을 디딘 방문객을 맞아준다. 마치 깊은 숲속을 들어가는 느낌 같은 동화 속 한 장면에서 튀어나온 듯한 가야산 소리길의 '자연스러움'은 방문자로 하여금 경탄을 내도록 만든다.
지난 23일, 천년의 시간을 넘어 천혜 자연의 축복 아래 가야산 한 켠을 고고히 지키고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를 방문했다. 경내 곳곳에 걸린 연등과 장식물 등이 말해주듯 이날 해인사는 각종 행사 준비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성보박물관의 '해인사 개산 1222주년 특별전', '제64회 보살계 수계법회' 등의 준비는 물론이고 인근에서 열리는 '2024 팔만대장경 기록문화축제'에 대한 행사 등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마치 '축제 분위기'였다.
이날 정창훈 경남매일 대표,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겸 경남매일 고문 등 일행은 혜일 주지스님을 친견할 기회를 얻었다. 일행은 일주문에서 만나 구광루, 대적광전을 지나 스님이 계신 곳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스님께서 친히 나오셔서 맞아주시니 합장으로 예를 올렸다. 건물 내에서 합석하자 스님이 유리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차를 내려주신다. 덤으로 대추, 포도가 나왔다. 은은한 나무향이 나는 당내에서 향긋한 차까지 마시니 왠지 모르게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 해인사 혜일 주지스님에 대해서
지난해 3월 27일 해인사 제29대 신임 주지로 취임한 혜일 스님은 도견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86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90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해 구족계를 받았다. 주지하듯이 자운 스님은 근대 한국 불교의 단절된 계맥 복원을 위한 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3.1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용성 스님으로부터 전법계와 '자운'이라는 당호를 받았으며, 해방 이후 '청정승단 복원'을 주장하며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청담, 성철, 향곡 스님 등 한국 불교 '정통' 법맥의 스님들과 결사를 해 불교 부흥을 도모하는 등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이 맥락에서 혜일 스님은 한국 불교 정통 법맥을 잇는 스님 중 한 명이다.
혜일 스님은 그동안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문화부장,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아름다운 동행 사무총장, 조계종 14·15·17대 중앙종회의원, 백련사·연화사 주지, 제9대 조계종 교육원장을 지냈다. 이 외 '풀뿌리 언론'에도 큰 관심을 두고 전남에서 작은 신문사를 운영하며 지역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을 한 적 있다. 이러한 스님의 행적을 통해 고려해보면 향후 스님은 해인사의 부흥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현재 사회 문제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과를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스님은 유쾌하고 털털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근엄한 모습 뒤 가끔 농담을 던지며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상냥함도 품고 있었다. 다만 사회 문제에 대한 고견을 들을 때는 더없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문제에 대해 스님은 "AI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부분이 있지만 두려울 정도로 사람을 해롭게 하는 부분도 많다"라고 하며 "일자리 감소, 소외계층과 비소외계층 간 기술 격차에 의한 빈곤의 심화, '윤리적 결정'의 부재, 최근 딥페이크 등 개인 정보에 대한 침해 등 우리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또 자연스럽게 'AI 충격'을 받고 있다", "특히 향후 군사력과 AI의 결합에 의한 군사충돌이 우리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덧붙여 스님은 "우리는 너무 앞을 보고 달려가고 있다. 이제는 약간 '멈춤'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또 스님은 지금의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특히 안타까워했다. "현재 우리는 과거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금 청년들은 우리 부모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불안 속에 살고 있다. 학문을 쌓고,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좌절하는 청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지금 당장의 어려움은 크지만, 청년들이 현재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지금보다 더욱 깊이 고민해 청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해인사가 추진하려는 주목할만한 사업은 무엇인가?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할 만큼 스님은 교육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때문에 '사회'와 '교육'과 관련해 해인사의 향후 추진 사업에 대해 물어봤다. 이에 대해 스님은 팔만대장경과 관련한 교육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살짝 귀띔해줬다. 혜일 스님은 "현재 국내에는 판각 기술자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방법은 바로 기술자를 키우는 것이다"라고 하며 "'판각 전문 기술자 교육원'과 같은 학교를 세우고자 한다. 이 학교에서 대장경의 제작, 보존, 활용 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 '학교'는 일반적인 학교와 다르다. 교육비를 받으며 전문가를 배양하는 것이 아닌, 해인사에서 '생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 명의 숙련 기술자를 키워내는 것이다. 스님은 "판각은 정성과 노력,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다. 우리의 조상은 지금의 기술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놀라운 치밀함과 정확성을 통해 대장경을 만들어냈다", "해인사가 키워내고자 하는 기술자는 그러한 치밀함, 정확성을 겸비한 '진정성'을 가진 인재다"라고 하며, "이러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해인사에서 그들의 생활과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즉 해인사가 학생에게 월급을 주며 공부를 시키고, 학생은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는 것이다"라고 전한다. 게다가 스님은 "이 '인재'는 쉽게 나오지 못한다. 5년, 아니 10년 이상의 공부와 정성,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이를 후세에 남김없이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친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스님의 구상은 이미 '시범 진행' 중이다. 현재 대장경연구원에서는 '인경학교'를 운영하는 등 대장경과 관련한 '전문인력' 양성에 돌입했다. 해인사는 향후 이를 더욱 체계화할 것으로 보인다.
▶ 해인사를 떠나며
해인사의 업무를 총괄하는 주지스님은 매우 바쁜 분이다. 이미 충분한 친견의 시간을 받은 경남매일 일행은 더 이상 스님의 시간을 뺏을 수 없어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일행은 나머지 찻잔을 비우고 스님께 예를 올리고 건물을 나왔다. 일주문을 벗어나니 이미 해는 저물고 있었다. 소리길의 녹 내음을 다시 한번 머금은 후 일행은 합천을 뒤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