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4 22:53 (월)
화재경보기와 양치기 소년
화재경보기와 양치기 소년
  • 경남매일
  • 승인 2024.10.01 2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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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리 창원봉림휴먼시아2단지아파트 관리소장
장은리 창원봉림휴먼시아2단지아파트 관리소장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업무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중에서 각종 시설물의 유지관리에 관한 업무를 빠짐없이 수행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시설물 점검 주기는 점검 종류나 시설물 등급에 따라 다르다. 관리사무소에서는 기본적으로 일상점검, 주간점검, 월 점검, 분기별 점검, 반기별 점검, 년 점검 등이 있으며, 이것 외에도 시설물 특별 안전진단 등을 하고 있다.

입주민의 안전과 재산을 관리해 주는 이 일을 십 년도 넘게 했으면 이제 조금 둔감해질 만도 하건만, 시설물 관리는 소홀해 질 수도 없고 익숙해질 수도 없다. 시설물의 고장, 노후화, 기계의 에러, 기상 조건 등, 환경이나 시설물 상태가 수시로 변하며, 예상하지 못한 사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천 청라의 전기자동차 화재사건을 대하면서도 남의 일이 아닌 듯 심란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소방 수신기는 양치기 소년이다. 우리는 양치기 소년한테 속지 않으려고 화재경보가 울리면 우선적으로 주경종, 지구경종, 비상사이렌, 비상방송을 정지한 후 현장을 확인하는 시절이 있었다. 원칙대로 하면 현장 확인하고 돌아와서 오작동을 정상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10분은 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화재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또 잘못 울렸네', '진짜 불 난 것 맞아?' 등의 반응이 먼저 나온다. 심지어 야간에 경보기가 울리면 입주민들의 잠을 깨운 대역죄인이 될 뿐이다. 평소 성실했던 내가 융통성이 없는 직원이 되거나, 화재감지기를 비싼 것으로 사용하라는 조언도 듣는다. 입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에 이 정도의 입주민 불만은 스스로 감수하여야 할까? 화재경보기의 오작동은 그저 입주민들만의 피해로 그치지 않는다.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공동주택 내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인한 비화재보나 오작동 등으로 소방대원들이 출동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곧 소방력 낭비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전체 화재 출동 건수 5만 5755건 중 화재감지기 오작동 출동 건수가 1만 3985건으로 24.1%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 출동 4건 중 1건은 오작동 출동인 셈이다. 이 비율은 지난 2020년 7.1%, 2021년 32%, 2022년 39%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화재경보기는 왜 이렇게 잦은 오작동이 발생하는 것일까? 소방청이 지난 2022년 발표한 화재경보기 오작동 경보의 원인을 분석 결과에 따르면 기기 결함이 15%로 가장 많은 수치를 차지했다. 이어 습기·결로 13%, 관리 불량 12%, 먼지·분진 10% 등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오작동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오작동이 반복된다면 안전불감증을 부추기며 실제 화재 발생 시 더 큰 대형 참사를 불러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이 화재경보기에 대해서만 유독 미약한 대처를 보이는 것은 국민들을 안전불감증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국가에서는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지만 한번이라도 일어나면 사람의 생명과 전 재산을 빼앗아 가는 일이기에 고가의 장비와 이 시설물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을 갖추게 하고 있다. 이번 청라 화재사건을 대하면서 전기자동차의 문제점도 문제이지만 지금이라도 두 팔 걷어 올리고 화재경보기의 오작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긴다.

화재경보가 울리면 관계자들도, 입주민들도 실제 상황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화재 시 인명 피해를 줄이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양치기 소년의 말을 믿자니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한다. 특히 습기가 많은 장마철이나 여름에 오작동이 많이 발생한다.

오늘 직원들에게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무조건 현장 확인부터 라고 강조하고 소방경보기 작동 시 대처 방법에 대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교육만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화재경보기 오작동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강한 규제와 행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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