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강사 유우창은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이라는 제목의 경남매일 기고문에서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김해시사(市史)의 수정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한 시민연대를 '광기',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 '역사 장사치', '이덕일이 분비한 악취' 등의 모욕적 표현으로 형법 제311조 모욕죄로 고소당하였다.
김해시사나 부산시사, 전라도천년사 등을 집필하여 수익을 취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임에도 자비를 들여서 식민사관으로 쓰여진 '가야사'의 수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적반하장으로 모욕을 한 것이다. 고대사학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희진의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 책을 보면 알수 있다.
이 책 제1장이 '식민사학 왜 문제인가'이고 세번째 절의 제목이 '한국 고대사학계의 기득권층과 식민사학'이다. 식민사학 극복과 역사학 발전, 고대사학계의 실체를 알기 위해 여기에 나오는 글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주입식 교육을 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사람이 배운 바닥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식민사학 추종자들에게도 바로 이 점이 적용된다. 그들이 망해 버린 일본제국에 충성심이 있어서 식민사학에 매달릴 리는 없다. 그저 배운 것이 세상 진리의 전부인 줄 아는 버릇이 자기도 모르게 나올 뿐이다."
"연구를 통해 잘못된 정보를 검증하고 수정하는 학자의 특성을 잃어버린 것이 죄라면 죄일 것이다. 하긴 그 특성을 말살시키는 교육을 받았고, 또 배운대로 가르치고 있으니, 당연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특별한 가책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최대한 좋게 생각해 줄 때 그렇다는 뜻이다. 더 캐고 들어가다 보면 보다 흉측한 이유도 발견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역사를 조작하여 조선인들에게 주입시키려 했던 내용과 별 차이가 없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식민사학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았다고 결론 짓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일제시대에는 황국사관과 식민사관에 찌든 일본 선생에게 역사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방 후에는 소신껏 연구해서 식민사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식민사학적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문정창도 이병도와 신석호처럼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일제강점기 군수를 지낸 사람이다. 이병도와 신석호는 식민사관에 근거한 역사연구를 반성하지 않았지만, 문정창은 일제강점기 군수를 지낸 것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해방후 역사를 연구하였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역사학계를 비판하면서 국사바로찾기 운동도 하였다. 식민사관에서 벗어난 주인정신 관점으로 '근세 일본의 조선침탈사', '고조선사연구', '한국고대사', '일본상고사', '백제사', '가야사' 등 다수의 저작을 했다.
"이런 성향이 원로 몇 사람에게서만 끝이 났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굳이 식민사학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들은 연구와 함께 다음 세대의 학자를 키워내는 선생이었다. 학생은 선생에게 배운 성향을 따르는데, 원로 학자들이 배운 식민사학적 성향이 똑같은 과정을 거쳐 그들이 키워낸 제자들에게 계속 이어진 것이다."
"그저 자기들이 배워 알고 있는 지엽적인 결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근거랍시고 끌어다 맞추어 놓고 그것을 학문으로 포장할 뿐이다. 고대사학계의 식민사학 문제는 식민사학 자체의 논리보다 학계의 구조적 비리와 더 밀접하게 얽혀있다. 이런 사정이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 침투해 있는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교주와 신도에 가깝다. 추종자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 야심을 가지고 성과를 내보려면 이런 분위기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대사학계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실제로 재능이 뛰어난 분들이 이슬처럼 사라져간 이야기가 떠돈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 동문들 사이에 "우리 학교 교수는 동창 중에서 제일 병신 같은 놈 골라 시킨다."는 말이 있다. 지금 출세했다고 거들먹거리는 교수들이 내놓는 논문의 수준을 보면 안다. 바로 이 점이 연구 성과와 관련하여 식민사학의 추종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직결된다.
'표절과 재탕 그리고 철면피'의 소제목 항에는 "베껴 먹는 성향이 무엇 때문에 식민사학과 직결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비전문가도 있을 것이다. 의문은 간단히 풀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제도권 고대사학계에서 베껴 먹으면 누구 것을 베껴 먹겠는가만 생각해 보면 해답이 나온다.
아무리 내용을 베꼈더라도 전공자가 아니면 이런 수법으로 만들어진 연구성과를 알아보기가 어렵다. 같은 전문가들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기득권자의 특권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 고대사학계의 특성상 편집만 잘해도 권위있는 학술상을 타니까 일본 것 베끼기가 유행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수 있다."
동북아역사지도는 1장이 아닙니다. 특위 당시 300여 장이었습니다. 그 중 1장에 독도가 출력범위 밖이어서 인쇄되지 않았습니다. 인쇄 실무자의 실수를 임기환이 자기 책임이라고 사과했습니다. 그 지도 이외 다른 지도에는 독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사실은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독도가 나타났다고 숱하게 얘기했습니다. 증거 지도도 제시하고, 증언도 제시했습니다.
독도가 단 한장도 없다는 이헌동의 변명은 끝이 없습니다.
그냥 자신이 잘못 알았다고 하면 그칠 일을, 왜 자꾸 새로운 거짓말을 지어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