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20:50 (화)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으려면 읽고 써야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으려면 읽고 써야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9.12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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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넘기기 31
김미옥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균형 감각과 인간 이해하려면
한 줄이라도 써야 사유 시작해
김미옥 시인
김미옥 작가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면 싸게 살 수 있지만 동네책방에서는 펼쳐진 책을 고르는 재미와 책을 읽고 좋은 책을 추천하는 책방 주인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이번에 소개할 책이 그렇다. 김해 내외동 '생의 한가운데' 책방에서 책방지기가 소개한 책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삶이 밑바닥으로 내려갈 때가 있다. 왠지 내 삶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자기 연민에 빠질 때 읽으면 좋은 책이 있다. 김미옥의 책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라는 책이 그렇다. 저자가 쓴 '미오기傳'도 같이 읽으면 환상의 궁합이다. 활자중독자인 저자 김미옥이 자신의 삶을 숨김없이 이야기한다. 작가가 읽은 책들과 삶이 묘하게 어울리며 하모니를 이룬다. 삶의 비참했던 순간이 이성적 재정리로 칼날처럼 번쩍인다. 동정심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도 이성의 칼날을 갈고 있었는지, 그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은 저자가 신기하기까지 하다.

김미옥에게 책은 버팀목이고 길라잡이고, 숨을 쉬는 도구이고 어두운 길을 걷게 방향을 잡아주는 등불이다. 어떤 순간에도 책을 손에 놓지 않은 탓인지 사유가 남다르다. 책을 읽고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작가라 문장이 찰옥수수처럼 찰지다. 군더더기가 없다.

다른 저자들의 책을 자기의 인생에 녹여서 책을 소개한다. 그 중 김경민의 "책읽기는 귀찮지만 독서는 해야 하는 너에게" 이 책을 읽고 경탄하는 지점을 살펴보자. 작가 김경민은 아들 김비주에게 '의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사실을 의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식의 문 속으로 성큼 들어서는 첩경이다. '내가 생각하는 책의 가치를 자식이 무가치로 인식한다면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며 고전 읽기는 낡고 비과학적인 것 같지만 "균형 감각과 인간에 대한 이해에 필요하다"며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쏠린 무모한 지식인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고 덧붙인다.('책 읽는 법을 책으로 배우다')

오래됐거나 유행이 지나서 버리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알뜰하거나 검소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주는 아름다움을 좋아했다. 이끼 낀 붉은 벽돌, 오랜 손길로 윤이 나는 마루, 자연의 감가상각이 건축물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경우다.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길을 되찾은 영혼의 인간을 만나면 나는 감탄한다. 미학이 가치를 앞서는 시대가 됐다. 젊음을 권장하는 사회가 성형과 보톡스를 강요하듯 건축도 영원한 젊음을 꿈꾼다. 그러나 건축의 젊음은 신축으로 완성된다. 현대가 아무리 미학이 가치에 우선하는 시대라지만 '건축의 역사'는 세월과 환경으로부터 건물을 지키려는 투쟁이었을 것이다.('서재의 창 너머로')

김미옥은 책에서 늘 새로운 것과 가성비와 매끄러움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생각들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유 좀 한다는 인문학자들이 쓴 책보다 낫다.

아라이 유키의 '말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열일곱 가지의 이야기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따돌리는 '분리'는 파괴된 언어로 시작된다.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혐오 표현들이 근래에 들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말 찾기의 여정이다.

말이 사람을 살리는 촌철활인(寸鐵活人)의 인식은 우리가 무심코 쓰던 말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부당한 고통을 받는, 괜찮지 않은 이에게 '괜찮아'가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자각은 말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자기 책임'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서 놀러 가다 죽은 건 '자기 책임'인데 왜 정부 탓을 하냐는 댓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편견이 그은 선을 넘다')

갤러리 조선 민화' 도록 관련 글에서 민화의 매력은 자유분방이다. 호랑이는 멍청하고 용은 지능이 모자라 보인다. 심지어 춘화도 에로틱하지 않고 웃긴다. 세련된 유명 화가의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 무명의 민중 화가가 그린 민화다. 거칠어도 역동적이며 해학적인 집단의 정서가 녹아있다. 글을 몰라도 한눈에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온다. 세련된 귀족 문화도 백성들의 민중예술 앞에서 빛을 잃는다. 민화는 민중의 눈물이고 기원이고 소박한 삶이었다. 민화는 서민만이 아니라 공중과 양판네들의 삶에도 깊숙하게 들어가고 있다. 민중 속에서 발화된 민화가 계층이니 신분의 구별없이 집단문화의 원형까지 돼버린다. ('사는 게 참 웃기고도 정겹고나') 작가의 다방면 독서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김미옥의 책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속에 저자가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저자의 견해를 엿보고, 또 마음에 드는 책들을 사서 읽는다면 풍요로운 인생의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읽고 내 견해를 한 줄이라도 쓴다면 그야말로 사유의 풍년을 맞게 될 것이다.

김미옥 작가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책표지.
김미옥 작가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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