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김미애(이하 김미애)는 부산 해운대을 재선의원이다.
김미애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졌고, 4년간 병마와 싸우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겨졌지만,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미애는 포항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중퇴하고, 부산 동래구 반여동(현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태광산업 방직공장 노동자로 취직하여 검정고시를 봐 야간 대학에 들어갔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국회의원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미애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할머니를 만나면 다정히 손잡고, 안고 스킨십을 하고,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등 유명 인사와 찍은 사진이 많지만, 유독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프로필로 올린다.
지역구에 있을 땐, 해장쿡(해운대, 장바구니, COOK)이란 이름으로 장바구니 들고 전통시장에 가고, 시간 날 때마다 지역구를 누비는'동내 한 바퀴'를 하면서, 주민들 민원을 청취하기 때문에 해운대을 에선 김미애와 사진 찍고, 악수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다.
시장에 가면 노점상 하는 할머니, 아주머니의 파, 마늘도 까 주고, 어깨 안마도 해주고,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의원님이라 부르는 사람보다'미애야'하고 부르는 사람이 많고, 대부분 언니, 동생, 엄마라 부르는 등 가족 같은 분위기고, 생활이 어려운 할머니께 수시로 전화하여 안부를 묻는다.
주민들은 김치, 찰밥, 반찬 등을 만들어 수시로 '미애야 반찬 가져가라'고 전화하고, 명절 때 전 부처 놓았다고 가져가라고 하기도 하며 후원금도 낸다.
김미애가 살아온 궤적만큼 인간관계 또한 감동적으로 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올여름 35도가 넘는 날씨에도 구·시의원들과 함께 민원 현장을 방문하고, 비탈진 곳에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만들고, 하수도 뚜껑 교체, 보도 확장 등 생활민원을 직접 챙긴다.
또한 공원, 길거리에서 휴지를 줍는 일도 일상화되어 있고, 장마철, 하천, 산비탈과 공사 현장을 점검하고, 비서관, 구, 시의원들과 함께 찐빵집, 순대집에도 수시로 간다.
또한 매주 토요일은 구, 시의원들과 정기적으로 '민생 회의'를 하고, 여기서 도출된 내용은 해운대구청과 부산시에 전달하여 처리결과를 직접 챙긴다.
또 세비를 받으면 매월 300만 원씩 사회에 기부하는데 지난 4년간 기부한 돈이 1억 2000만 원이 넘는다.
또한 국회의원 당선 후 지역구의 어려운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20여 차례 식당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했다.
말이 '알바'라고 하지만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식탁의 남은 음식을 치우고 닦는 등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미애가 알바하는 날은 뜻있는 지역주민들이 몰려 그 식당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김미애가 이렇게 주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챙기는 이유는 지역구 관리라기보다, 일찍 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온 사회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보답일 것이다.
대부분 국회의원은 목에 힘주고 얼굴 알리는 행사장만 다니는 등 몸으로 부딪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미애는 수시로 '동네 한 바퀴'를 하며 주민을 만나고, 식당 알바를 하고, 토요일마다 민생 회의를 하고, 거리에서 휴지를 줍고, 매월 300만 원씩 사회에 기부하는 등 힘든 일을 자청(自請)하고 있다.
그러나 김미애는 '아무리 힘들어도 축복'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