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시인 '목선'
말보다 무거운 사랑이란
남아서 책임을 다하는 것
달콤한 말들은 사람을 유혹한다. 그러나 달콤하기만 한 말들은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살아나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난다. 그 말들은 도망치기가 바쁘다. 아무리 천 번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말은 말일 뿐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 앞에서 가벼운 것들은 가라앉는다. 생계를 위해서 거친 파도를 타고 바다로 함께 나가는 일은 숭고한 일이다.
'목선'은 한평생 사람들과 바다로 나간다. 그들의 희망을 담고 기꺼이 바다로 나가준다. 먼 바다로 나가 풍랑을 만나 부서져도 구멍 난 곳을 때우고, 다시 또 나간다. 기꺼이 동행해 준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해야 온몸이 해체될지도 모르는 곳에, 생사를 건 곳에, 기꺼이 따라갈 수 있는가? 그랬던 적이 있기는 있었는가?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보여줄 수 있는 사랑, 짊어지는 사랑, 이런 사랑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권혁재의 시 '목선' 앞에 잠시 멈춰서 보는 것은 어떨까.
삶 속에 스민 사랑은 고난의 피 흘림도 함께하고 때로는 눈물을 돌아서서 삼키기도 한다. 기쁜 날 동행도 좋지만 풍랑 속을 함께 헤쳐 나간 사랑은 '말보다 무거운 사랑'이다.
사랑은 꼭 사람하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함께 닳아지며 견뎌온 '목선'은 변덕스러운 인간의 사랑과 차별화된다. '목선'은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시적 화자인 '나'와 닻줄이 끊어질 때까지 함께 병든 몸을 견뎌왔다.
권혁재의 시 '목선'은 꼭 목선(木船)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와 함께한 목선들이 어느 외진 포구에 묶여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목선이 되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은 길이 힘들지만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공중에 흔들리는 깃발처럼 공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목선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목선
썰물이 나서도 따라가지 못한 남자
병든 몸으로 가계를 달래온 갯냄새가
끊어진 닻줄에 매여
발걸음을 떼지 못하네
한 생을 잊기 위해 바람의 눈이 된 여자
밀물로 돌아노는 힘겨운 물고기같이
길목에 미리 나앉아
죽을 만큼 뱉는 울음
말보다 무거운 사랑이
포구 외진 곳에 묶여 있네
-문학매거진 “포엠포엠” 2024 가을호 ‘신작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