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 282쪽에 "그런데 '사이비역사학'이라는 명명은 이러한 여러 측면을 소거해버린다는 난점이 있다. 또한 이 논전의 관전자들이 사이비라는 명명을 식민사학의 거울상으로 오해할 우려도 있다."는 글이 있다.
285쪽에는 이런 글도 있다. "'사이비역사학'이라는 표현이 무척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표현이 학문의 다양성이나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처음에 이 용어를 사용할 때도 그런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현 상황은 '사이비역사학'이라는 단호한 표현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본질을 드러낼 가장 적확한 용어가 '사이비역사학'이라는 결론이다."
이에 대해서 김상태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젊은 주류 고대사학자들이 '사이비역사학'이라는 개념을 두고 얼마나 노심초사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 단어의 근원적인 의미를 자각하고 첫 인용문에서 사이비라는 명칭이 '식민사학의 거울상'이라 말하고 있다. 식민사학이 거울에 비치면 그 거울에 '식민사학=사이비역사학'이라는 본질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오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걸 반증하는 말이다. 이처럼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들이 '사이비역사학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젊은 주류 고대사학자들은 이 치명적인 자기폭로, 즉 남을 사이비라 말하면서 자신의 사이비성이 폭로될 수 있다는 심연의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심연에서 은밀하게 밀려오는 그 공포마저 넘어서야 할 만큼 사태가 심각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 용어를 사용해야 했던 피맺힌 사연이 바로 두 번째 인용이다. 사이비역사학의 진심어린 자기증명이다.
동북아역사지도 폐기 사태는 해방 후 주류 고대사학계가 맞이하는 최대의 타격이자 위기였다. 이들은 그 이유가 이덕일을 비롯한 사이비역사학자들의 선동과 이에 동조하는 정치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무서워서 약간 비판하고 만만한 이덕일 무리는 죽도록 욕한다. 절반은 분풀이고 절반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덕일 무리와 정치인들이 그들을 위기로 내몬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반성할 줄 모르는 그들의 누적된 오만과 작당이 가장 큰 요인이다.
주류 고대사학계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사이비역사학자로 몰고 있는데, 보편타당한 상식을 지닌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사이비역사학이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관으로 만든 역사를 따르는 식민사학이다. 그래서 식민사학 유풍의 역사연구를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이비역사학자가 된다.
'일본서기'에 스이코(推古) 천왕 시절인 서기 600년 "신라와 임나가 서로 공격, 신라와 임나가 왜에 사신을 보냄, 신라가 임나를 또 공격함, 왜가 신라와 임나의 사신을 초대하여 스쿠시에 도착, 왜가 장식마 부대장을 임명하고 임나 사신을 영접함, 임나 사신 귀국길에 오름" 등의 기사가 있다.
611년 임나가 사신을 왜에 파견, 623년 임나가 왜에 사신을 파견, 신라가 임나를 공격, 왜가 사신을 임나에 파견, 638년 백제, 신라, 임나가 사신을 왜에 파견, 642년 왜왕이 사신을 임나에 파견, 646년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 4나라가 공물을 헌납하고 세금을 납부함
김해의 금관가야가 532년, 고령의 대가야가 562년에 멸망하였다. 그런데도 임나는 646년에도 존속하여 '일본서기'에 나온다. '일본서기'의 임나가 우리나라 가야가 아니고 고구려, 백제, 신라도 왜에 세금을 납부한 일본에 있었던 소국임을 알수 있다. 그래서 임나가 우리나라 가야라고 하면서 임나관련 지명을 우리나라에서 찾는 사람들은 사이비역사학자가 된다. 식민사학이 없는 북한학계에서는 일본의 기비지역에서 임나관련 지명을 찾아서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와 조희승의 '임나일본부 해부' 책에 밝히고 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부터 고구려 장수왕 시기까지 영토 변화
1) 고조선 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 분포에 따른 고조선 최대 영토는
(1) 요하 서쪽인 지금의 요서 지역(산해관이 있는 진황도시 동쪽)과
(2) 요하 동쪽인 지금의 요동 지역과
(3) 한반도 전부다(한반도 중북부 지역만 고조선 영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 제시한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 지도 참조
고조선 최대 영토는
전국시대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기 전의
고조선 전성기 시절이 고조선 최대 영토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