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16:19 (화)
'정말로 그럴까?'로 내가 원하는 삶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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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9.05 2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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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넘기기 30
서동욱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반대 방향에서 질문하는 행위
사유 출발이자 내 삶 시작
서동욱 작가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책 표지.
서동욱 작가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책 표지.

한 시대를 지배하는 사고가 있다.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시대를 지배하는 사고를 유행하는 액세서리를 착용하듯이 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꼭 그렇게 생각해야만 할까를 물을 때 사고의 전환이 시작된다. 나의 사고를 시작하는 것이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의 저자 서동욱은 프롤로그에서 ‘날씨가 우리를 만드는 것이지 우리가 날씨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생각 또는 철학도 날씨를 만들어낸다. 하이데거는 오두막에 폭풍이 치고 눈이 오면 그때가 철학자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반대 방향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날씨가 만드는 사상이 아니라 날씨를 만드는 사상은 없는가? 세계에 대한 체험은 계획적인 공부거리가 될 수 없다. 세계 안에 나 있는 심연들 때문에, 우리가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의 모습은 없고 파편들뿐이다. 보라, 세상은 깨어졌다. 그 파편들이 아름다우니. 이제 조개껍데기들이 빛을 반사해 우주로 돌려보내는 아침이면 하나씩 주워보자. 그리고 조각들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보자.’고 한다.

저자 서동욱은 파편들을 주워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맞추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배워왔던 아름다움의 잣대로 파편들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대로’하라고 한다. 이것이 중요한 책의 핵심이다.

서동욱은 철학자이자 시인이고,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문학과 철학을 가로지른다. 수많은 자료의 인용에 입이 딱 벌어진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배경 지식이 있으면 좋겠지만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한 인용일 뿐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사고의 전환 속으로 이끌면서 세수부터 시킨다. 그리고 옷을 바꿔입게 한다. 어느새 새로운 방향의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인용 속으로, 헤엄치게 한다.

어려운 철학서나 인문학 책을 읽으며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의 핵심이 눈앞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저자가 읽어주는 것 같다. 당신이 책 꽤나 읽은 독자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것이다.

지면상 서동욱의 책에서 생각하면 좋을 것, 머릿속에 넣어두면 좋을 것, 사유의 전환으로 이끌 내용들을 편집해서 소개한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 관련해서 반복은 잘 보존된 집안의 보물이 상속되듯 동일성을 유지한 무언가가 되돌아오는 것이 전혀 아니다. 반복은 새로운 것이 출현하기 위한 조건일 뿐 아니라, 과거의 것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과거의 것을 반추하며, 이를 통해 비로소 제대로 과거의 의미를 이해한다.

어리석은 인간은 자기 앞의 한 사람을 순응시키려 하고, 자신의 식민지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모두와 다른 고유함’이라는 타인의 본성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 까닭에 그의 시도는 결국 좌초하고 만다. 타인은 그가 있는 바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각자의 본성에 따라 살도록 놔두기, 이것이 자유인의 공동체가 제일로 삼는 교육이다.(남녀관계는 평생의 학습을 요구한다)

천재가 새로운 규칙을 창조해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낸다면, 바보는 순수성으로 세상에 통용되는 규칙과 가치를 무력화해 세상을 텅 비워낸다. 둘 다 세상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길을 연다. 결국 바보와 천재는 서로 전혀 다른 인물들이고 전혀 다른 길을 가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바보와 천재)

비판이란 통치에 대한 저항이다. 계몽 또는 철학함이란 제한이 없는 것이고 통치자는 제한을 만드는 자이다. 따라서 철학을 하되 제한에 복종하는 일, 정확히는 철학의 이름으로 자율적으로 복종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철학의 이름 아래는 제한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위반할 수 있는 길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자리 잡는다.(철학자와 계몽군주)

걷는다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느린 이동 방식 같지만, 실은 시간을 버는 일이다. 산책은 지구 위를 걸어 다니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 자체이다. 산책은 자유로운 생각의 폭죽을 만들어낸다. 산책에는 단조로움과 새로움이 결합해 있다.(산책)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장식품, 황금액자가 진정한 미를 헤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이 금빛 액자에 끼워지거나, 잘 익은 밀밭 같은 색의 벽지를 배경으로 해야 적당하다고 누누이 말한다. 아울러 어떤 배경색에 놓이면 안 되는지도 세심히 설명한다. 이러한 당부는 장식품 즉 그림이 끼워질 액자가 단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그림의 본질에 속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실제로 이 그림은 금빛 액자에 끼워진 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걸려 있다.(다자인, 예술로서의 장식품)

나이 드는 자는 결코 영원한 현재 속에 불멸하는 이데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들면서 놀라고 지친 여름이, 사그라든 9월의 정원을 바라보듯 점점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나이 드는 인간을 위한 철학)

상식에 기반한 삶에서 한 발 더 나가고 싶다면 서동욱의 책 “철학이 날씨를 바꾼다” 속으로 깊이 들어가 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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