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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의 철학적 사유
메멘토 모리의 철학적 사유
  • 경남매일
  • 승인 2024.09.0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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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말라'는 뜻의 라틴어 문구이다. 동양권에서 비슷한 말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로마공화정 때 전쟁에 나가 승리한 개선장군에게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고 경고하는 말이었다. 그 당시 개선장군에게 수여하는 관에는 이런 경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대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뒤를 돌아보지 마라.

지금은 여기에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개선장군에게 한 이 말은 오만하지 말고 신들을 공경하고 겸손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은 즐겨라)과 일맥상통한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기독교의 영향으로 현세에서의 쾌락, 부귀, 명예 등은 부질없는 것이라는 기독교적 허무주의로 상징하기 시작했다(위키백과).

우리 인간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 왜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죽음이라는 암울한 시각으로 망쳐야 하는 걸까. 메멘토 모리는 플라톤이나 몽테뉴 같은 철학자가 말했듯이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라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한 말로 한국의 유명 인터뷰어 셀럽인 김지수 기자가 쓴 <위대한 대화>-인생의 언어를 찾아서-에서 인용한 말이다.

그녀가 2015년부터 진행한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국내외 석학들의 지혜가 모이는 최적의 인문학 풀랫폼으로 명성을 얻어 2300만 뷰를 기록했다. 패션지 <보그>와 디지털 미디어 <조선비즈>의 문화전문 기자로 오래 활동하다 독립했다. 인터뷰한 18명의 세계 석학들과의 대담 글 중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의 저자 파스칼과의 대담 글이 무척 가슴에 와닿았다.

대담 내용의 핵심은 '나로 살라'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음이라는 숙명을 타고 태어났기에 그 숙명에 구애받지 말고 자기로 사는 편안함과 자기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셀럽 김지수 씨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를 미리 숙독하고 파스칼과 인터뷰했다. '생은 틀에 박힌 반복과 놀라움이라는 이중구조를 취한다.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 이유가 생긴다. 이것이 생을 카운트 다운하는 이점이다. 삶은 영원한 도입부요, 점진적 전개 따위는 끝까지 없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고 고정 거주지가 없는 노숙자들이다.' 파스칼은 사랑과 일을 노년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여 임종 전까지 욕망할 것을 권고한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는 엄숙한 명제 앞에 젊은이도 늙은이도 욕망 앞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는 '살아 있으면 사랑하라. 노년에 욕망이 감퇴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100세 시대의 중간 지점인 50대에 생물적 화학적 신비가 존재하느냐는 김지수의 질문에 '50이라는 좌표는 하나의 이정표이다. 은총과 붕괴 사이에서 파도를 타는 나이로 좀 더 높은 것을 꿈꾸고, 더 멀리 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건강한 상태지만 노화의 첫 징후도 나타난다. 더는 젊지도 엄청 늙지도 않은 무중력의 정지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문득 공자가 지천명(持天命)인 50 나이에 주역 공부를 다시 시작한 '공자오십이학역(孔子五十而學易)'이 떠오른다.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지천명의 나이에 주역 공부에 심취한 성인의 심경을 이해할 것 같다. 인생은 적어도 50년은 지나야 '되어야 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삶이 자기 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스칼은 '에너지를 쓰는 게 삶이다. 10년을 주기로 스스로를 과감하게 재구축해야 자기로 사는 편안함과 자기일 수밖에 없는 불편한 나로 살 수 있다'고 했다. 도전할 에너지가 고갈되면 스스로 생존을 증명하는 빛을 잃어가는 것이다. 죽기 전에 주인공인 시간에 맞서 싸워야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의 주체성을 찾는 최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습관적으로 취미생활과 운동을 계속함으로써 나를 충전하고 다른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리듬을 만들 수 있다. 젊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 건강,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욕망을 가지는 것이다.

공부는 스스로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하는 자기 구제의 핵심이다. 일, 참여, 공부를 통해 삶이 풍요로움으로 충만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파스칼은 묘지명에 새길 문장을 묻자 '나는 인생을 사랑했고 인생은 나에게 100배로 갚아 주었다'고 새길 거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젊어질 수는 없어도 탐구와 관찰의 정신으로 공부하면 습관화된 생활로 굳어버린 삶을 유연한 태도로 바꿀 수 있다. 행복한 노화는 결코 평화로울 수는 없다. 쉼 없는 역동성으로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가꾸고 연마해야 평화라는 말이 제일 마지막에 찾아오는 법이다. '메멘토 모리'는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철학사상을 함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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