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구는 2015년 한국 상고사 대토론회에서 주제발표 15분 대부분을 태강지리지에 관한 것을 발표했다. '낙랑군 수성현은 갈석산에 있고 이곳은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산해관 근처에 만리장성 동단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면 주류 고대사학계의 소고조선론과 낙랑군 평양설이 허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석구는 실전하지도 않는 태강지리지에 있는 구절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전승된 사료가 다양해서 믿을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만리장성이 지금의 요동까지 있었다는 소고조선론의 주장이 맞고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도 맞다는 것이다.
윤내현의 태강지리지에 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전승된 사료가 다양하다는 것은 맞다. 태강지리지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료들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혼돈된 사료들을 철저히 연구하여 가부를 가려야 한다.
태강지리지도 마찬가지다. 전승들 중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것은 버리거나 교정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학자의 첫번째 임무다.
그럼 어떻게 그 작업을 할수 있는가. 우선 주어진 사건에 가장 근접하고 신뢰성 있는 사료들을 선택하여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다음에 그렇게 구성된 사실을 통해 후대의 사료나 잘못된 사료를 평가 구분 교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낙랑군 수성현 갈석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사료를 선택해야 하는가. 먼저 당대의 기록인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 본기'와 '효무본기'를 사료로 선택한다. 가장 신뢰할수 있는 사료다.
이 사료에 보면 중국과 고조선의 경계는 갈석산 근처라고 되어있고, 그 지역을 당시는 요동이라고 불렀다. <사기> '몽염열전'에는 만리장성 동단이 요동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래서 이 사료들에 의하면 갈석산과 낙랑군 수성현이 함께 있었다는 태강지리지의 기록은 옳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주장을 위해 윤내현이 활용한 사료들이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갈석산 지역이다> 사료 1 『사기』 권88 「몽염열전」사료 2 『사기』 권110 「흉노열전」사료 3 『태강지리지』 『사기』 권2 「하본기」의 갈석에 대한 주석인 『사기집해』에 수록] 사료 4 『통전』 권186 「변방」 <동이> '고(구)려' 사료 5 『진서』 권42 「당빈열전」사료 6 『통전』 권178 「주군」 <평주> 노룡현에 대한 주석<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난하이다> 사료 1 『회남자』 권4 「추형훈」 사료 2 『염철론』 권9 「험고」사료 3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고구려전> 사료 4 『삼국지』 권30 「오환선비동이전」 <고구려전> 사료 5 『삼국유사』 권3 「흥법」 <순도조려> <요동은 2가지 의미가 있다> 사료 1 『제왕운기』 권 하 사료 2 『한서』 권28 「지리지」하 사료 3 『한서』 권40 「장진왕주전」
윤내현은 이런 방식으로 대고조선론을 주장하였다. 고조선 시대의 요하도 이런 식으로 연구하여 북경 동북쪽에 있는 난하라고 하였다. 고조선 연구로 중국 북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북한의 이지린의 주장도 그러하다. 북한학계는 낙랑군 평양설을 폐기하고 낙랑군 요동설을 취하고 있다.
김상태는 철저한 검증을 통하여 윤용구나 <역사비평>에 논문광풍을 불러 일으킨 젊은 학자들을 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부르는 건 매우 적절하다고 한다. 왜 이들을 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부르는가에 대한 자세한 것은 <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 책에 잘 나와있다.
이 젊은 주류 고대사학자들은 소고조선론을 주장하여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이들은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려고 한 사료나 유물 해석을 활용하여 낙랑군 평양설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방해가 된다고 한 이론이나 사료, 유물해석이 고조선 역사임에도 그러하다. 이들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동북공정 전에는 진나라의 만리장성 동단이 산해관 인근이라 하였고, 필자도 그렇게 배웠다.
이런 경향의 사학자들로 기경량, 안정준, 위가야, 조인성, 박대재, 신가영, 이문영 등이 있다고 한다. 김상태는 이문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한다. "이문영은 환빠(환단고기 추종자)들을 유사역사학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문영이 역사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 말은 바로 본인을 가리키게 된다. 환빠 유사역사학자와 이문영이라는 식빠(식민사학 추종자) 유사역사학자가 잘 어울리는 순간이다. 이문영은 이덕일 때문에 입지를 보장 받는다. 스토커가 되는 양 이덕일을 따라다니며 비판하고, 이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 주류 고대사학계는 이런 이문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덕일은 이런 이문영을 신경쓰지 않는다."
이글은 <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 책과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 책을 참고하여 쓴 것이다.
■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부터 고구려 장수왕 시기까지 영토 변화
1) 고조선 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 분포에 따른 고조선 최대 영토는
(1) 요하 서쪽인 지금의 요서 지역(산해관이 있는 진황도시 동쪽)과
(2) 요하 동쪽인 지금의 요동 지역과
(3) 한반도 전부다(한반도 중북부 지역만 고조선 영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 제시한 "고조선 관련 문화 범위" 지도 참조
고조선 최대 영토는
전국시대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기 전의
고조선 전성기 시절이 고조선 최대 영토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