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지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 동북아역사특위였다. 여기서 활동한 분으로 2017년 6월 14일 도종환 문체부 장관 인사청문회 김세연 의원의 질의 응답을 보면 주류고대사학계는 반성은커녕 언론 플레이를 하였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의 핵심인 낙랑군 평양설과 제대로 된 역사서가 아닌 일본서기에 의거하여 임나 관련 지명을 우리나라에서 찾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사이비역사학자나 유사역사학자,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환빠'로 몰아서 대응한다. 그래서 이들을 식민사관 추종자로 '식빠'라고 한다.
동북아역사특위에서 활동한 김세연 의원과 도종환 의원의 대화를 보면 알수 있다. 자세한 것은 유튜브에 '식민 강단 주류사학의 적폐와 잔재를 청산하자는 김세연 의원님'의 동영상에 있다. 지면관계로 두 분의 대화를 요점만 정리하였다.
김세연 : 최근에 주류 역사학계에서 심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많은 고통을 겪으셨겠습니다. 제 실명이 한국고대사학회의 성명서에 후보자와 함께 거론된 입장에서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역사문제는 역사학계가 자신들만의 기득권으로 내세울만한 그런 영역도 아닙니다. 모두에게 알 권리가 있고 질문할 권리가 있고 역사학계는 그에 대해서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일본이 우리 역사 왜곡을 했던 대목이 일제강점기에 조선사편수회를 통해서 조선사를 편찬했는데, 일본의 시각으로 여러 가지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를 심어 놓았고, 그 과정에서 20만권 정도의 우리 역사서를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해방이후에 6·25를 겪으면서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일제 잔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제 조선사편수회 편찬작업에 참여했던 인물이 우리나라 국사학계의 태두가 되어버렸습니다. 알고 계시죠 (네) 이를 계승한 인적 네트워크가 국사학계를 지배하면서 현재까지 불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이러한 일제강점기 역사 연구 연장선에서 형성된 독특한 카르텔이 주류학계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연구와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고 그것이 검증받고 그러면서 학문발전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한 것이 철저하게 봉쇄되어온 것이 우리 국사학계의 현실이었습니다. 어떤 학문의 권위자도 죽을 때까지 신진학자들의 학문적 연구에 의해서 도전을 받고 또 이를 철저한 연구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반박을 해야합니다.
19대 동북아역사특위는 우리 역사를 지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제 잔재 청산 해결을 위해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논의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일절 수용하지 않고 패스만 하더니 이제 무시와 외면일관도로 그치지 않고, 국회 동북아역사특위의 활동을 환단고기를 추종한다는 있지도 않은 일을 날조해서 언론에 사실을 왜곡하고 역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류사학계의 일부 선동자에게 준엄한 경고를 합니다!
부실함을 넘어서 철저하게 왜곡된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사업에 국고 50억 원을 날리더니 이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니까 자신들에 대한 이해관계 침해라 인식하는지 국회위원회의 활동자체를 폄하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사이비, 환빠, 이런 국회와 우리 위원들에 대해서 권위와 본연의 역할까지도 왜곡해서 공격하는 행태는 우리가 함께 좌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후보자 동의하십니까?
도종환 : 위원님 말씀에 동의하면서 발언할 기회를 주신다면 저도 제 입장을 소상히 말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세연 : 이런 주류학계의 일부 선동가의 행태는 역사지키기가 아니고 치부가 드러난 구태학계의 반발입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서 우리 역사학계에 제대로 된 토론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후보자 답변할 것 있으시면 하시기 바랍니다.
도종환 : 동북아역사대책위원회 특위활동으로 부실한 지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고 교육부 사안조사로 해서 44점을 맞고 중단된 사업이었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하버드대 EKP사업을 제가 중단시켰다고 계속 지난 2주간 언론에서 공격을 받았는데, 제가 중간에 특위 위원으로 2014년 하반기에 들어가서 2015년에 주로 활동을 했는데, 이 하버드 사업은 2014년 상반기에 중단이 되었더라구요. 그런데도 제가 다한 것으로 전제 단정을 하고 비판하고 낙인찍고 하는 것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지도를 만들려고 했던 목적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했던 것인데, 이상하게 유사역사학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환단고기때문에 그런다고 하는데 환단고기를 아직 정확하게 읽어보지를 못했습니다. 그 책을 읽고 경도되어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단정하고 낙인을 찍는 일들이 계속되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들 여러 군에는 산천 곧 산과 강이 여럿 있습니다. 논란이 있는 산천을 제외하고 이때까지 이견이 거의 없는 지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의무려산입니다. 이 의무려산은 요동군 무려현에 있습니다. 난하는 의무려산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요동군에서 동쪽으로 1,000리 더 가야 하는 낙랑군이 도리어 요동군에서 서쪽으로 한참 거리에 있는 난하 주변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덕일은 낙랑군이 하북성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의무려산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