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8회 맞는 연극 마니아들 꿈의 축제
교황청 문화유산 배경 공연 '특별 경험'
수도권 집중 문화예술 지방 중심화 현장
첫 육성 프로그램 한국 아티스트 참가
'모두 위한 연극' 아비뇽 자부심·정체성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프랑스 남부 아비뇽,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 아래 황홀한 공연의 향연이 펼쳐진다. 도시를 붉게 물들인 깃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 거리를 가득 메운 포스터들과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으로 도시가 뜨겁다. 거리 곳곳 테라스에 앉아 공연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축제인들의 모습이 왠지 정겹다. 세계적인 공연예술 축제,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의 막이 열리는 순간이다. 올해로 78회를 맞이한 아비뇽 페스티벌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21일까지 전 세계의 연극인들을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공연예술의 세계로 초대했다.
'교황의 도시'로도 잘 알려진 아비뇽은 중세시대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다.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아비뇽 시가지 전체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러한 역사의 맥락을 머금고 오늘날 아비뇽 페스티벌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연예술 축제로 피어났다. 과거와 현재의 문화가 교차하는 축제의 장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아비뇽 교황청(Palais des Papes)을 중심으로, 셀레스탱 수도원(Cloitre des Celestins), 카름 수도원(Cloitre des Carmes), 불봉 채석장(Carriere de Boulbon) 등 역사적인 공간에서 마주하는 연극적인 순간들은 오직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연극뿐 아니라, 무용, 퍼포먼스, 음악 등 동시대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공연을 소개한다. 올해는 세계적인 안무가 보리스 샤르마츠(Boris Charmatz)를 협력 아티스트로 선정한 데 이어, 스페인 출신 연출가 안젤리카 리들(Angelica Liddell), 폴란드 출신 연출가 크쉬슈토프 바를리코프스키(Krzysztof Warlikowski)를 비롯한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35개의 공식 초청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또한, 에르메스 재단(Fondation d'entreprise Hermes)과 안무가 마틸드 모니에(Mathilde Monnier)와의 협력 아래에서 공연예술인 육성 프로그램 '임파서블 트랜스미션(Transmission Impossible)'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에 한국의 판소리 퍼포머 노은실과 사운드 아티스트 진인화가 참가하는 좋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교황의 도시를 넘어 아비뇽이 축제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에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 초대 아비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었던 장 빌라르(Jean Vilar)의 공헌이 있다. 당시 프랑스 국립민중극장(Theatre National Populaire)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던 장 빌라르는 1947년 아비뇽 예술 주간(Une semaine d'art en Avignon)에서 처음 선보인 교황청 공연을 계기로 아비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게 됐다. 이후 약 20여 년간의 임기 동안 그는 파리를 비롯한 수도권에만 집중돼 있던 문화예술 생태계를 지방으로 확대하며 문화예술의 격차를 줄이고자 힘써왔다. 그의 노력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문화예술의 장벽을 허물고자 하는 오늘날 아비뇽 페스티벌 운영 정책의 기반이 됐다.
'모두를 위한 연극(Theatre pour tous)'을 꿈꾸던 장 빌라르의 뜻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생각의 카페(Cafe des idees)', '전문가들의 만남(Rencontres professionnelles)', 카페 바 '마하바라타 (Mahabharata)' 등을 통해 아티스트, 관객, 공연예술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소통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제공한다. 또한, 처음 관람하는 관객을 위한 프로그램 북 (Premiere fois), 어린이 관객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 아틀리에, 축제 가이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 또한 더해진다. 장애인 관객을 위한 휠체어 좌석, 스마트 안경, 자막 서비스 등 소외 없는 관람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도 이어진다. 축제를 넘어 문화예술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그들의 고민과 열정이 축제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세대를 초월하며 깊어지는 아비뇽 페스티벌에 대한 사랑은 오늘날 아비뇽인들의 자부심이자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오 흐부아르 (Au revoir, 안녕히 가세요)'라는 작별 인사 대신 전하는 '봉 페스티벌(Bon Festival, 좋은 페스티벌 되세요)'이라는 인사에서 축제에 대한 이들의 깊은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문화와 예술로 하나 되는 마법 같은 축제의 밤하늘 아래, 아비뇽의 거리는 더욱 밝게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