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7 21:06 (화)
전통문화와 서양과학
전통문화와 서양과학
  • 경남매일
  • 승인 2024.08.0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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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법동사 주지·아리랑문화진흥원장·문학예술인
고성 법동사 주지·아리랑문화진흥원장·문학예술인

우리는 우주대자연의 현상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예로 하늘의 뜻은 봉(鳳)이라는 새가 가지고 온다는 멋진 이야기로 풀었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인륜의 근본이 내재되어 있는 학문적 성찰을 추구했다. 특히 우리 민족은 개천(開天) 즉 하늘을 열어 그 뜻을 헤아렸다. 오는 10월 3일은 이를 기리는 경축일이다.

그래서 이를 삶의 근본으로 삼았다. 의식주(衣食住)는 물론 일체의 활동에 이를 근본으로 하는 문화를 이어왔다. 이를 우리는 전통문화라 한다. 예로 마을마다 전해 오는 풍물(風物) 또는 농악(農樂)이라는 놀이는 이를 담고 있는 전형적인 전통문화이다.

꽹과리를 들고 놀이패를 이끄는 상쇠의 이끌림에 의해 움직인다. 이때 상쇠는 천지인(天地人)을 뜻하는 쇠를 세 번 울려고 시작하고 세 번의 쇠를 울려 끝을 맺는다. 뿐만 아니라 머리에는 하늘의 뜻이 드리워져 그 뜻대로 드러나기를 뜻하는 꽃 백색 모란을 달고, 검은 색 바탕에 청적황(靑赤黃) 삼색의 띠를 몸에 두른다.

이는 봉(鳳)이 지니고 오는 청적황흑백의 오색(五色)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쇠를 세 번 두르고 몸에는 청적황 삼색 띠를 두른다. 띠는 어께를 둘러 허리를 돌려 매고 늘어 떨린다. 이는 삼색이 어우러져 일체만물이 하늘의 뜻대로 어우러져 그 모습이 드러나기를 기원하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곳곳에 세운 홍살문(紅乷門)의 가운데 삼지창이 부르는 봉강지(鳳降枝)가 드러내는 뜻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홍살문은 벽사의 기능으로 세웠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조형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아리랑(Arilang)이라 노래 불렀다. 이 같이 풍물 또는 농악은 물론 홍살문 더 나아가 노래로 부른 아리랑(Arilang)까지 개천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흔히 쓰는 햇살이라는 언어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즉 해에서 드리워지는 살에 봉이 지니고 오는 하늘의 뜻 즉 청적황흑백의 오색이 담겨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받아 살이라는 현상을 일으키는 새를 암컷 황의 역할이라 했다. 그래서 살이 드리워져야 했기에 무당도 신이 내리는 것을 "살 내린다."고 했다.

이제 서양의 과학을 살펴보자. 그들은 해 즉 태양으로부터 에너지가 온다고 했다. 그 에너지는 파장이라는 형태를 오는데 아인슈타인은 광자론(光子論)에서 광자(光子)라는 알맹이가 함께 파장 속에 묻혀 온다고 했다. 따라서 단순히 에너지라는 파장이 아니라 광자라는 핵심적인 본질이 에너지의 근본이라는 가설이다.

이를 신(God)의 입자 즉 힉스 보슨(Higgs boson)이라 부른다. 이를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에 의해 이를 발견했다고 난리를 편적이 있다. 이는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힉스보손이 처음 예측 했다고 하여 그의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물론 힉스(Higgs)가 아인슈타인의 광자(光子)와 동일 물질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하여튼 개천으로 드러낸 우리의 전통문화는 서양의 과학보다 더 명료한 우주대자연의 현상을 담고 있다. 그래서 빛을 이용한 초고속 광통신 인터넷이 등장하고 레이저라는 빛 즉 살로 하늘을 날아오는 드론을 파괴하는 장비가 개발되었다. 이 같이 햇살의 살은 청적황 삼색과 흑백 그리고 아리랑(Arilang)이라는 노래 등 우리의 전통문화로 전승돼 왔다.

밀양의 백중놀이 중 신농대를 세우고 오색천을 드리우고 그 천에 오색의 복주머니를 달아 소원이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천존(天尊)다리라는 전통놀이에서 오색의 천이 서로 얽혀 다리는 모습은 바로 하늘의 뜻이 드리워지기를 기원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아리랑(Arilang)이라 노래 불렀다.

이를 백제 사람들은 향로를 만들 때 담아내었고 가야와 신라 사람들은 의례를 위한 토기를 만들며 이를 드러내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정점에 나래를 펴고 서있는 봉의 턱밑 구슬이 바로 하늘의 뜻을 지닌 구슬 즉 천의주(天意珠)이다. 그리고 가야는 물론 신라 그리고 고려청자에 보이는 수많은 문양은 천의문(天意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는 아직 이에 대한 연구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수십 년 동안 필자는 아리랑(Arilang)을 연구하면서 이를 헤아리게 되었다. 이를 담아내는 그림이 바로 우리의 민화이다. 따라서 서양과학에 맹종(盲從)하는 현실을 뛰어 넘어 우리의 전통문화가 지니고 있는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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