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공약으로 내는 경우가 많은데, 20세기 초반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세기 초야말로 과학기술자들이 경제적인 문제들을 대규모의 공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미국의 후버댐(1936년)이나 네덜란드의 압슬로이트데이크(1932년)같은 초대형 댐, 엠파이어 스테이드 빌딩(1931년) 같은 초고층 빌딩, 철도나 지하철 등등이 만들어졌고 지금의 인류 번영에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보다 더 커다란 초초대형 프로젝트가 기획된 적이 있다.
아틀란트로파(Atlantropa) 또는 판로파(Panropa)라고도 부르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1920년대 독일 건축가 헤르만 죄르겔(Herman Sorgel, 1885~1952)이 고안한 초대형 개발프로젝트 이름인데, 그 핵심적인 내용은 지중해의 주요 지점을 막아 수력 발전 댐을 만들어 전기를 생산하고, 지중해의 해수면을 낮추어 새로운 농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 대형 프로젝트는 20세기 초 유럽의 늘어나는 유럽 인구와 이를 부양할 농지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계획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의 매력은 세계 평화를 무력이나 정치·외교가 아니라 기술로 해결하자는 발상에 있었다. 그 시대의 안목으로는 그럴듯한 계획이었지만 기술력의 한계와 전쟁으로 인한 자금 문제가 겹치면서 점점 잊혀졌고 전후에는 유럽 복구 문제로 인해 역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아틀란트로파 프로젝트의 대표 사업은 유럽의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의 모로코가 마주 보고 있는 지브롤터 해협을 막아 수력발전 댐을 건설하는 것, 그리고 최대 200미터까지 지중해 해수면을 낮추어 새로 생기는 땅에 대규모의 새로운 농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추가로, 지브롤터 해협뿐 아니라 튀르키예 다르다넬스 해협을 막아서 댐을 설치하고, 지중해 가운데의 시칠리아와 튀니지를 연결하는 댐과 고속도로 개통, 베니스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운하도 들어가 있다. 그야말로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도를 완전히 바꾸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이 대형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 지구적 대재앙이 될 뻔했다. 일단 지중해는 내해이며 염도가 높아서, 지중해의 물을 대서양으로 퍼내서 새로 생기는 땅은 농토로 사용하기에 불가능하다. 그 곳은 무시무시한 소금 사막이 된다.
게다가 일 년 내내 따뜻하여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지중해성 기후는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바뀐다. 그리고 소금사막이 주위 지역까지 사막화에 끌어들여 이베리아반도와 남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일대는 지구 최악의 사막으로 변모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해안선이 후퇴하여 새로운 육지가 드러날 경우의 새로운 국경선을 평화롭게 정하는 문제나, 생산되는 전기의 배분문제, 기존 항구도시들이 내륙도시로 변할 경우 도시기능상실 등의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또, 지중해 물을 대서양으로 펴낸다면 지중해를 제외한 기타 지역의 해수면이 약 10m 정도 상승하게 된다. 이 경우 태평양의 섬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상하이, 코펜하겐, 로스앤젤레스 등 상당수의 해안 도시와 방글라데시, 네덜란드 등 국토의 상당 부분이 저지대인 국가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된다. 유럽의 유명한 항구도시 로테르담, 안트베르펜, 함부르크는 물에 잠기고, 지중해의 최대 항구도시 발렌시아는 기능이 사라진다. 또, 지중해 해수위가 200미터나 내려가면 수에즈 운하가 유명무실해져 지중해 선박들이 아시아로 가려면 과거 대항해시대처럼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우회해야 한다.
죄르겔은 뮌헨의 독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러 가는 도중 자전거를 타던 중 차에 치여 67세의 나이로 사망하는 바람에 그 프로젝트는 동력을 잃고 말았다. 1962년 발표된 역사소설 '높은 성의 사나이(The Man in the High Castle)'에서는 2차대전에서 승리한 나치 독일이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는 항상 뭔가 그럴듯한 여운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