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0 13:22 (금)
'풋' 지나며 깊은 아름다움 채워지죠
'풋' 지나며 깊은 아름다움 채워지죠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7.31 2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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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29
안현미 시인의 ''풋'을 지나서'

무(無)와 나를 접붙여 나무가 돼
내 삶 상태 최고조에 달하고 싶어
안현미 시인
안현미 시인

'풋'은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은', '미숙한', '깊지 않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풋사랑, 풋과일, 풋내기 등의 말이 있다. 여름은 '풋'을 지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풋'이 익어간다. '풋'을 지난다는 것은 아름다워지고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진리를 추구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욕망만은 어쩔 수 없다. 진리란 아름다움이고 선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제어장치가 고장난 욕망과 같아서 막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장미를 추구하는 자들인 우리에게 그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안현미 시인의 ''풋'을 지나서' 시 앞에 멈춰서서 고민해 본다. 시적 화자는 '나는 무(無)와 나를 접붙여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며 또 '절정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한다. 무(無)와 나를 접붙인 '나무'는 무엇인가. 여기서 나무는 무아(無我)인가. 무아(無我)는 무엇인가? 무아(無我)는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냥 내가 없다가 아니라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것은 그 상황과 인연이 만들어 낸 것일 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번민은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것에서 생긴다. 꼭 '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상사의 것에도 마찬가지다. 나무는 어떤가? 나무는 나무로 살아간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태양이 내리쬐면 태양을 견디고 열매를 키우고, 그 열매를 가져가면 가져가는 대로 받아들인다. 묵묵히 수행자처럼 받아들이고 제 몫을 산다. 아름다움의 절정은 이런 것인가. 삶을 살아내는 최고의 절정은 이렇게 사는 것일까. 나무가 되고 싶다는 것은 어떻게 살고 싶다는 뜻일까. 절정이 된다는 것은 내 삶의 상태가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인데,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여기서는 확실하다. 나무가 돼 살고 싶다는 것이다.

태양의 뜨거운 입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능소화'는 '풋'을 지나서 절정을 지나고 있다. '풋'을 지난다는 것, 나무로 산다는 것(나에게 무(無)를 접붙여서), 절정을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장미를 추구하는 우리들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안현미 시인의 ''풋'을 지나서'를 곱씹으며 말이다.

'풋'을 지나서

 

태양은 은둔중이고 능소화는 절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장마가 아니라 장미를 추구하는 자들

오늘의 추천 계절은 여름

오늘의 추천 아이템은 

나무와 나와 무(無)

나는 무(無)와 나를 접붙여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절정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의 추천 계절은 여름

우리는 장마가 아니라 장미를 추구하는 자들

태양은 은둔중이고 능소화는 절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안현미 시집 "이별의 재구성"에서(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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