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7 22:17 (화)
단단하게 안아줘서 살 것 같아요
단단하게 안아줘서 살 것 같아요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7.25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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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28
안미옥 시인의 '덧창'
뜨거운 날 가려줘서 버텨내고
차가운 날 덧대줘서 버텨왔고

안미옥 시인

7월의 한여름 낮이 뜨겁다 못해 불타고 있다. 그대로 노출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도 힘들다. 건널목을 건너가면서도 숨이 차다. 쨍쨍한 햇빛이 유리창을 통과할 때 집은 한증막이 된다.

한더위에 덧창이 제격이다. 덧창 하나가 더위를 물리치는 것은 아니지만 더위를 반으로 줄어들게 한다. 꼭 한더위가 아니더라도 추가한 창 하나가 삶의 질을 올린다. 멋스럽고 시원함을 더해주는 덧창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노출을 막아주는, 완충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숨을 편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안미옥의 시 '덧창'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고난 앞에 섰을 때 살짝 안아주고 가려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직접 가려줄 수도 있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건넬 수도 있다. 손을 잡아 줄 수도 있다. 도움을 주려는 그 마음이 덧창이 될 수도 있다. 덧창은 버티게 하는 힘이다. 힘든 시절을 지나가게 하는 힘이다.

성실하지만 가난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학기가 바뀔 때마다 휴학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휴학은 학업의 중단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을 알게 된 같은 과 선배가 이번 등록금은 내가 빌려줄 테니 형편이 되면 갚으라고 했다.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등록금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고, 선배에게 돈을 빌리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선배는 덧창이 돼줬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지독하게 힘들어서 겨우 버티며 살아갈 때가 있다. 여름 한낮의 더위가 방금 편의점에서 들고 나온 아이스크림을 녹일 정도로 기승을 부리는 날이 있다. 한더위가 있다면 한추위도 있다.

바깥의 날씨보다 마음의 날씨가 얼어붙고, 검정 봉지 안의 아이스크림을 녹일 정도로 열이난 마음의 온도가 내려가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때 덧창이 필요하다. 이번 여름은 안미옥의 시 '덧창'이 지친 마음의 덧창이 된다. 나를 단단하게 안아 줄 덧창이 필요한 여름이다. 나를 바쳐줄 덧창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덧창

검정 비닐봉지 안에서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다

나는 안에 있었고

바깥에는 공사하는 사람들
무언가 짓는 사람들은 항상 그보다 큰 소리를 낸다

빈 유리컵들이 쌓여 있다

나는 버텨냈다고 말했고
친구는 버텨왔다고 말했다

깨진 유리들이 모여 손이 된다

단단한 두 손으로
버티면서 짓고 있었다

-안미옥 시집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에서(문학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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