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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음식 '콩갱'을 아시나요
경남 음식 '콩갱'을 아시나요
  • 경남매일
  • 승인 2024.07.2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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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우리 속담에 "비짓국 먹고 용트림한다"라는 말이 있다.이 속담은 아주 거친 음식을 먹고도 잘 먹은 체하느라고 거드름을 부린다는 의미를 가진, 실속은 없으면서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편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는 속담도 있다. 상대에게 좋게 대하면 내게 더 좋게 돌아온다는 뜻으로 비짓국 거리 사러 왔다가 고운 말 들은 생각에 '이 두부 얼마요?' 하게 된다는 말이다.

두부를 만들다 보면 콩비지라는 또 다른 훌륭한 식재료가 부산물로 얻어진다. 1870년에 편찬된 '명물기략(名物紀略)'에서는 "비지는 부재(腐滓)가 속전(俗傳)된 것이다. 곧, 두부(腐)의 찌끼(滓)다"라고 나온다. 그러나 콩은 대두(大豆)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한국어 콩 찌꺼기 비지는 한자어로 지게미 '박(粕)'자를 써 대두박(大豆粕), 두부박(豆腐粕)이라고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의 학자인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이 1800년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비지를 두부재(豆腐滓)라 했으며, 조선 중기 의관인 퇴사옹(退思翁) 양예수(楊禮壽, 1530~1597)의 '의림촬요(醫林撮要)'에도 비지를 두부재(豆腐滓)로 기록하면서 유종(乳腫) 젖이 곪아 생기는 종기에 좋다고 나온다.

조선 중기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에도 조선 사찰의 승려들이 식료로 콩비지(豆腐滓)를 이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1686년 8월 13일 구례 길상대암, 효이 스님에게 쌀 다섯 되를 빌렸다. 절의 스님이 경숙이를 연곡사로 보내어 비지(豆腐滓)를 얻어오게 했다." 조선시대 산중사찰들은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두부와 국수는 종교 의례용 혹은 자가용으로 자주 만들어 먹었다. 두부를 만들고 난 부산물로 얻어지는 비지 역시 음식으로 활용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맷돌로 갈아 정수만 취해서 두부를 만들 때 많은 찌꺼기가 남는데 끓여 국을 만들면 구수한 맛이 먹을 만하다"고 밝히고 있다.

1923년 3월 23일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노동자들이 자주 들르는 막걸리 집에 비짓국 한 그릇에 막걸리 한잔으로 호구를 때웠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 막걸리 집에서 노동자들의 막걸리 안주로 비짓국을 팔았던 것이다.

경남에서는 이 음식을 콩갱이라고 하는데, 콩갱은 우리말 콩과 한문 국 '갱(羹)'의 합성어다.

비지는 면포를 깐 바구니에 담아 따뜻한 곳에서 2일 정도 띄운 것을 사용하는데, 해안지방의 콩갱은 냄비에 물을 붓고 비지를 푼 다음 배추김치를 넣고 끓이다가 조갯살, 두부, 어슷하게 썬 대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한소끔 끓인 국이다.

한편 내륙에서는 불린 콩, 간 돼지고기, 데친 배춧잎에 물을 붓고 푹 끓여 소금으로 간을 하며 콩을 갈아서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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