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17:23 (일)
뜨거웠던 꽃잎은 떨어져도 아름다워
뜨거웠던 꽃잎은 떨어져도 아름다워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7.10 2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를 통해 삶을 묻다 26
정끝별의 시 '염천'

뜨겁게 타올랐던 마음도
달콤한 순간이 짧다 해도
한번은 불타 봐야 할 숙명
정끝별 시인
정끝별 시인

불타는 마음도 한때다. 계속 누군가를 향한, 무엇인가를 향한 뜨거운 마음은 자신을 삼키고 말 것이다. 뜨거움은 지고 말아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여름, 태양을 불지르는 것은 능소화다. 그것도 해맑게 웃으며 하늘에 불을 지른다. 불이 그렇게 상큼할 수가 없다. 뜨거운 것이 상큼하다. 뜨거운 마음이 밝다. 태양이 뜨겁게 지상에 불을 지피면, 모두가 그늘로 숨어든다. 그늘로 숨어드는 것들을 얕보기라도 하듯이 능소화는 담장 위에 너울지며 눕는다. 온몸으로 태양을 안고 눕는다. 전혀 찡그림 없이 맑게 웃는다.

시간 앞에서 지고 말 것을 알고도 뜨거워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랑이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끝별의 시 '염천' 앞에서 멈춰 설 것이다.

강렬한 것은 화려해 보인다. 뜨겁고 화려하게 불탔던 능소화는 담벼락 아래 떨어져도 아름답다. 그 꽃송이들을 줍고 싶다. 땅에 떨어진 능소화 송이들은 물을 주면 부활할 것 같다. 지나갔지만 뜨거웠던 사랑은 언제라도 불을 지피면 부활할 것 같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무덥고도 더운 날씨에 온몸을 불태워서 더위를 가중시킨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일이든 사랑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여름의 온도를 1도라도 올린 적이 있는가.

한 사람에 대한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 앞에서, 손익계산의 분기점에서 햄릿처럼 방황하고 있다면 정끝별의 시 '염천'을 차분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지치고 힘들 때, 우리는 사랑했던 기억으로 살아간다. 사랑했던 기억이란 짧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여행일 수도 있다. 누구나 뜨거움을 안고 있었던 시절이 있다. 마치 능소화가 뜨거운 담장 위에서 너울거리면서 뜨거운 줄도 모르고 활짝 피듯이, 그런 시절이 우리를 버티게 해준다. 화려한 시절의 끝이 빨리 온다고 해도 서운해 할 일은 아니다.

사랑하면서 꿈꿨던 꿀 같은 달콤함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린다 해도 한번은 불타볼 일이다. 정끝별의 시 '염천'은 해 쨍쨍한 여름날에 읽어보길 권한다. 쨍쨍한 날, 화려한 날, 초록이 무성한 이 여름에는 아직 질 것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염천

능소화
담벼락에
뜨겁게 너울지더니 능소화
비었다 담벼락에
휘휘 늘어져 잘도 타오르더니 
여름 능소화
꽃 떨구었다 그 집 담벼락에
따라갈래 따라갈래 달려가더니 
여름내 능소화
노래 멈췄다 술래만 남은 그 옛집 담벼락에
첨밀밀첨밀밀 머물다 그래그래 지더니
올여름 장맛비에 
능소화

그래 옛일 되었다 가을 든 네 집 담벼락에

-정끝별 시집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문학동네 201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