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16:46 (일)
베풂의 작동 메커니즘
베풂의 작동 메커니즘
  • 경남매일
  • 승인 2024.07.0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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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물품 손상에 현관 음료 등 준비
층간 소음에 아이스크림 건네기
주변 우호적인 관심 품고 눈 돌리기만
자기 마음 변하고 타인까지 좋아져
내가 사는 세상, 내게 살만한 곳 돼야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한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 미국 애틀란타의 한 주민이 택배 물품들이 손상된 채로 배달되는 일이 많아 종종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택배 운전자들이 물건을 거칠게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심 끝에 신통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택배 운전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현관문 앞에다 택배 운전자들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음료와 과자 등을 비치해 놓고, 그들을 격려하는 문구도 함께 써놓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비치된 음료 등을 보고 감동한 택배 운전자들은 그의 물건을 훨씬 조심스럽게 다뤄주었고, 어떤 이는 격한 감격의 제스처를 취하거나 현관문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했다.

작은 호의를 베풀어 갈등이 가볍게 해소할 수 있었으니, 진정 평화적이고도 지혜로운 해결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례를 보니, 쇠귀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층간 소음의 갈등 해결 방법이 생각났다. 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층에서 쿵쿵 뛰는 애 때문에 시끄러우면,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면서 애 얼굴도 보고 이름도 물어보라. 왜냐하면 아는 애가 뛰면 덜 시끄럽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정신 승리의 고결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논어에서도 '덕으로 미움을 갚으라(이덕보원 以德報怨)'고 했고, 에이브러햄 링컨도 "적을 망가뜨리는 최고의 방법은, 그를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택배 운전자를 위한 배려나 위층 아이를 위한 아이스크림은 모두, 이덕보원(以德報怨)의 실천이며, 링컨이 말하는 '적을 친구로 만드는 행위'에 해당한다. 호의와 베풂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기는 하지만, 위 두 사례는 마음이 변화하는 주체가 각기 다르다.

택배 사례는, 내가 상대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면, 그로 인해 상대가 나를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으로 느끼게 되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거나 나를 이롭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즉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작동 방식으로서, 상대를 친구로 만들어 '적을 망가뜨리는' 멋진 전략이다. 여기에는 호의의 '주고받음'이 전제되어 있어, 은근히 거래의 개념이 개입된 비즈니스 냄새가 다소 풍긴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방법은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은 층간 소음의 범인인 아이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애초에 없었다. 당초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나니, 내 마음 속의 그 아이는 평소 불편한 소음을 내게 강요하던 밉살스런 윗집 아이에서 '알고 지내는 이웃 사람' 내지는 '친분이 있는 동네 아이'로 변해 버렸다. 내가 호의를 베풂으로써 상대를 보는 나의 관점, 나의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상대를 그대로 두고 내가 변하여 갈등을 완화시키는 방법이니, 이는 차원이 다른 고도로 지혜로운 혹은 대단히 종교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신영복식 사고의 원리는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당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은 당신의 호의를 받은 사람보다 당신에게 호의를 다시 베풀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즉 호의를 베풀면 그 호의를 받은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가 펜실베이니아 의회에서 활동할 때 적대적인 라이벌 의원이 있었는데, 그와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에게 아주 희귀하고 흥미로운 책이 있다는 말을 들고, 나는 그 책을 읽고 싶으니 며칠만 빌려달라는 요청의 쪽지를 써 보냈다. 그는 즉시 책을 보내주었고, 나는 일주일 후 감사의 쪽지와 함께 책을 돌려주었다. 다음에 의회에서 만났을 때, 그는 처음으로 나에게 매우 정중하게 말을 걸어왔고, 이후 나에 대해 협조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어 그가 죽을 때까지 우정을 유지하였다."

이 벤저민 효과는 신영복 효과와 그 원리는 같지만, 그 작동 메커니즘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신영복 효과는 내가 베푼 호의로 상대에 대한 내 인식의 변화를 도모하는 데 반해, 벤저민 효과는 내가 상대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내게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벤저민 효과 쪽이 훨씬 능동적이고도 전략적이다. 실제로 적대적이거나 껄끄러운 상대와 소통하거나 가까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면, 상대방이 거부할 수 없는 작은 요청을 해보시라. 그러면 경직된 관계에 작은 틈새가 절묘하게 벌어지기 시작하는 기막힌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신영복 효과와 벤저민 효과는 모두 호의를 받은 쪽보다 호의를 베푼 쪽의 마음이 더 우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심리적 현상을 설명한다. 인간 심리의 묘한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의 예다. 아마도 베푼 사람은 상대가 필경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호의를 베풀었다고 자신의 판단과 행위를 정당화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심리적 기울어짐으로 인해 인과가 전도된 인지 편향이 생기는 것으로 이해된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그러니 이들 효과는, 공동체 사회를 살아가려면 타인들과 호의뿐만 아니라 폐 끼침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남들에게 너무 베풀지 않고 내 것만 챙기는 각박함은 당연히 호감의 대상이 되지 못하겠지만, 남의 신세를 조금도 지지 않으려고 오직 내가 가진 것만으로 버티며 생존하는 사람도 남의 호감을 받기 힘들다는 말이다. 공동체 사회에서 적절한 폐 끼침도 서로를 결속시키는 바인더로서 작동한다는 점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이러한 베풂의 작동 메커니즘은 우리가 주변에 우호적인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다. 마음이든 물질이든 너무 쩨쩨하게 굴지 말고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굳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좋은 관심을 베풀어 보면, 내 마음이 변하여 세상 사람들이 좀 더 좋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적어도 내게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고 내 삶의 재미가 좀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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