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17:41 (일)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
광기에 휩싸인 '역사 장사치'들
  • 경남매일
  • 승인 2024.07.0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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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창 부산대 사학과 강사
유우창 부산대 사학과 강사

지난 6월 18일 화요일 오전, 이른바 '애국시민' 몇 사람이 김해시사 발간을 방해하기 위해 김해시청에 모여 '성명서'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김해시는 식민사관으로 왜곡하여 '임나일본부설(가야국=임나)'로 점철된 김해시사 제2권 가야편의 발간을 전면 중지하고 수정 발간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을 이렇게 광기에 휩싸이게 한 원인 제공자는 누구일까? 그들의 주장 곳곳에 이덕일이 분비한 악취가 짙게 배어 있다. 이덕일이 내질러 놓은 분비물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은 북한의 김석형과 조희승의 '분국설' 즉 삼국 및 가야가 일본에 분국을 건설했다는 설이었다. 그렇다. 이덕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북한 학자들이 주장했던 '분국설'이라는 달콤한 불량식품을 광속으로 흡입했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가야사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야사의 전반적인 연구 성과를 파악하지 못한 채 하나의 설에만 집착했기 때문이고, 그 설마저도 본인의 일천한 지식으로 인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김석형은 본래 서양사를 전공하려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그 암울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한국사보다 서양사는 그에게 일종의 도피처가 됐을 수도 있었다. 그는 그리스 폴리스가 해외에 '식민시'를 건설했고, 본토의 모시(母市)와 해외 식민시의 관계를 모티브로 한반도 모국과 일본열도 분국을 고안해 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희승은 '임나(가야) 분국'을 가야계 지명의 존재를 근거로 지금의 와카야마현인 '기비' 지방에 비정했다. 그리고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를 기비 지방에 있었던 야마토 왜의 '출장기관'이라고 하였다. '임나일본부'의 위치만 한국이 아닌 일본 땅에 둘 수 있다면, 그는 <일본서기>의 내용 그대로 '임나일본부설' 즉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야마토 왜가 임나 즉 가야를 점령하여 통치기관을 두었다는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의 가설을 '분국설'이라 하지 말고 '변형된 임나일본부설'이라 해야 할 판이다. 반면 한국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학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한편 이덕일은 조희승을 매우 흠모하고 있는데, 그가 책이나 유튜브에서 배설하듯 내뱉는 가야 관계 언설들은 전적으로 조희승의 설에 기반하고 있다. 개차반과 같은 그의 입은 남한의 학자들을 '식민사학자', '역사 매국노' 등으로 지칭하여 인격을 모독하고 있다. 도대체 가야에 대하여 무엇을 얼마나 알기에 그런 말을 하는지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다.

'임나=가야'이다. 이덕일이 항상 내세우는 조희승조차 "임나라는 말 자체가 일제 어용학자들에 의해 날조된 ≪일본부≫와 결부되어 조선 인민에게 역겨운 감정을 불러일으켰"지만, "확실"히 "가야는 임나이다"라고 했다. 심지어 이는 "력사적사실"이라고까지 했다. 남북한 가야사학자 모두가 '임나=가야'라고 인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덕일은 이를 부인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덕일은 악의적으로 '임나'와 '임나일본부'를 동일시한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태조 이성계가 건국)과 조선총독부(일제의 조선 통치기관)가 같은가? 다르지 않은가! 임나(가야)와 임나일본부(고대판 조선총독부)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덕일은 "임나일본부설, 즉 '임나=가야설'"이라고 하였다. 그가 지은 책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북한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일명 ≪임나설≫이라고 하고 있다. 얼핏 임나일본부와 임나를 동일시하는 듯 보이지만, 문맥을 고려하면 ≪임나설≫은 ≪임나일본부설≫의 약칭인 듯하다. 이덕일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임나설≫에 가야를 삽입하여 '임나=가야설'로 왜곡 변조시켰다. 그런 다음 마땅히 '임나일본부설'이라고 써야 할 부분을 악의적으로 '임나=가야설'로 대체해 버렸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남한학자들은 '임나=가야'로 인식한다. 그것과 '임나일본부설' 용어가 같다고 하면 남한학자들이 마치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고 있는 것처럼 독자들을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북한학계에서 쓰는 말을 인용한 것처럼 보이도록 ≪≫를 표시하여 ≪임나=가야설≫로 쓰는 간특함도 드러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가야=임나'라고 말한 조희승까지 이덕일의 타깃이 되고 만 셈이다.

이덕일의 행위가 정말 사악한 점은 조희승의 설을 따르는 것처럼 표현하면서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실제로는 그 설을 본인의 입맛에 맞게 왜곡 변조시켰다는 것이다. 즉 조희승이 하지도 않은 말을 마치 주장한 것처럼 왜곡시킨 것이다. 이덕일은 이런 행위에는 이골이 난 듯하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덕일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면서 김현구와 같은 학자들을 악랄하게 모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덕일은 김현구가 천관우의 뒤를 이어 <일본서기>에 서술되어 있는 왜의 행위를 백제로 주체 교체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김현구가 "고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했다거나 또 김현구를 "백제는 야마토 왜의 식민지라고 보는 학자"라고 뒤집어씌우고 있다. 이것은 죄행이다. 왜냐하면 김현구는 그렇게 주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기는 이덕일을 바라보는 김현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것은 인간의 도리로 해서는 안 되는 더러운 짓이다.

이덕일이 그렇게 애달파 하는 고 최재석의 말도 들어보자. 회고록 <역경의 행운>을 보면 "내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한 사례"에서 그는 허위 사실을 말한 상대방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그리고 "학문적인 비평이나 토론에서 허위의 말을 하게 되면 벌써 학문을 이야기할 자격은 상실된다."고 일갈하고 있다. 이덕일은 그로부터 도대체 무얼 배웠나? 이덕일은 이제 스스로 학자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필자가 부산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을 무렵 '재야사학자'는 나름대로 묵묵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강단사학자'도 그 연구 성과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이덕일과 같은 자가 나타나 재야사학자는 도매금으로 사이비 역사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가와 결탁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를 정상배(政商輩)라고 한다. 이덕일과 그 추종자들은 역사를 빙자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 즉 역상배(歷商輩, 역사장사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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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2024-07-13 20:30:48
<삼국사기> '강수열전'에 다음과 같이 출신을 밝히고 있다. "강수는 중원경 사량부 사람이다. 아버지는 석체(昔諦) 나마(奈麻)다."(強首, 中原京沙粱人也 父昔諦奈麻)

석(昔)씨는 신라 왕이었던 석탈해가 시조다. 석탈해 후손인 신라 11대 조분왕의 3남인 석지(昔祉)가 석탈해 6세손이다. 석지(昔祉) 후손으로 첨성대와 분황사를 건립한 인물로 알려진 16세 석오원(昔五源)이 있다. 이 석오원의 차남이 석체(昔諦)로 강수의 아버지다. 그래서 강수는 석탈해의 18세 후손이 된다.​(이완영의 <삼국사기 강수열전 정역(正譯)을 통한  임나가량의 위치 비정> 논문 참조)

강수는 금관가야나 대가야의 귀족이 아니라 신라 왕족이었던 석씨의 후손으로 이들의 주장은 허구로서 임나가량이 가야라는 것도 허구가 되고 가야 임나설도 허구가 된다.

이헌동 2024-07-13 20:25:41
조선총독부에서 식민사관으로 임나일본부를 만들기 위해 임나를 금관가야나 대가야와 연결시키기 위하여 가야를 임나라고 조작하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강수는 대가야나 금관가야 귀족의 후손으로 사민정책(徙民政策)으로 이주하여 충주에 살았다"는 논리다. 이것이 지금도 통설로 교육되고 있다. 강수가 금관가야나 대가야에 살았다는 기록은 전혀 없어서 이 논리는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추정일 뿐이다.

그런데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는 임나가량을 대가야로 설정하고 강수를 대가야 출신의 인물이라고 한다. 강수의 조부인 석오원이 첨성대를 만든 분으로 경주에 살다가 충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많아서 대가야 출신이라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할 식민사학 카르텔에 의한 역사서술이다.

강단사학의 가야사 전공자들이 조선총독부의 관점에서 가야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관점으로 '강수열전'을 보면 강수는 석탈해의 후손으로 가야인이 아니고 신라인의 후예다. 강수는 금관가야나 대가야의

이헌동 2024-07-13 20:09:54
이형우님 강수는 대가야인이 아니라 석탈해의 후손인 신라인입니다. 강수의 아버지가 나마벼슬을 한석체 입니다. 역사사실을 바르게 아시면 좋겠습니다.

이형우 2024-07-13 16:35:48
한국학자 누구도 김유신을 신김씨라 한 일이 없습니다. 김유신은 김씨입니다.
신김씨는 진경대사의 속성입니다.
대가야는 임나라고도 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강수가 스스로 임나가량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량은 대가야를 가리킵니다.

초발이 무엇인가 여러 학설 가운데 하나를 들먹이면서 반지성이고 유사역사학이라 하는게 우습네요. 초발을 수로란 견해가 나왔습니다. 아니한 반박도 나왔습니다. 저는 초발은 수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임나왕족 초발성지>에서 보듯이 임나라는 나라의 초발이라는 도성 이름으로 이해합니다. 왕족과 성지는 서로 같은 의미입니다.
나아가 초발은 광개토왕비문의 <임나가라종발성>의 종발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식민사관청산 2024-07-12 23:03:22
유우창 강사는 학자입니다. 아직 덜 배운 학자입니다.. 식민사학자가 임나를 왜 가야라고 하는지 유우창강사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공부하세요. 400년 당시 광개토태왕릉비문 어디에 임나가라가 한반도에 있다고 되어 있나요. 짐작으로 역사를 할 수 없지요. 일본인 식민사학자야 한국을 잡아 먹겠다는 야욕이라도 가진 식민사관을 가진 학자 이지만, 유우창 교수야 한국을 잡아먹을 계획이 있나요? 아니면 팔아먹을 계획이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광개토태왕릉비문의 임나가라를 심상소학보충교재에 나온 식민사학자의 주장을 추종할 필요는 없잖아요.

광개토태왕릉비문의 남거성, 신라성, 종발성, 임나가라가 한반도 어디에 있나요? 한반도에 있다는 실증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글을 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