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16:20 (일)
이재계신 이신계재
이재계신 이신계재
  • 경남매일
  • 승인 2024.07.0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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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하지가 지나고 나니 30도를 웃도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40여 년 전만 해도 하지 전 삼일 후삼일이 모내기 적기였으나 지구온난화로 달포나 빨라졌다. 복더위라 공부하기 힘든 계절이지만 몸 컨디션 난조로 석 달이나 쉬었던 주역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다소 무리지만 책상머리에 정좌해 역서를 펼쳤다. 하경 34괘의 29번째 괘인 풍수환(風水渙)을 읽었다. 재독까지 했지만 하경은 인간사에 관한 내용이라 진도가 느리다. 주역해설서 집필이 계획보다 2년이나 늦어져 마음이 조급해진다. 역해 관련 여러 문헌들을 두루 섭렵하느라 겨우 주역 기초편 집필을 끝낸 상태다. 본론인 괘효사와 십익해설의 집필을 생각하니 머리가 무겁다.

하지만 공부머리는 책을 읽어야 사는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왜 공자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라 했는지 새삼 실감 난다. 도통지사 야산(也山) 이달(李達)선생의 수제자인 대산(大山) 김석진 선생과 쌍벽을 이뤘던 아산(亞山) 김정호 선생의 필사본을 읽으니 몸에 생기가 돈다. 아산 선생은 풍수환괘 육사효(六四爻)를 '군자이재계신(君子以財癸身)', '소인이신계재(小人以身癸財)'라는 말을 인용해 효사를 해설했다. 군자이재계신은 '군자는 재물을 경시하고 자기 몸을 중시해 사람 된 바른 도리를 행한다'는 뜻이다. 소인이신계재는 '소인은 자기 몸을 경시하고 재물을 중시해 자기 몸을 버리고 물욕에 탐닉한다'는 뜻이다. 서전(書傳:書經 주해서)에 적은 재물은 소저(小儲), 큰 재물은 대저(大儲)라고 했다. 대저를 위하여 소저를 버리는 것은 군자의 도이니 이것이 바로 이재계신이다. 소저를 위하여 대저를 버리는 것은 소인의 도이니 이것이 이신계재이다.

아산 선생은 이재계신한 군자로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 선생의 행적을 효해석의 사례로 언급하고 있다. 소눌 선생은 곡자집을 짓고 강당을 차려 후진을 양성한 교육자였다. 자신의 재물 4~5백 석을 식구들 가용 외는 전부 후진 양성을 위해 이재계신하였다. 재물을 자신의 물욕을 채우는 데 쓰지 않고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니 이는 소저를 버리고 대저를 구한 군자이다.

김해 금곡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영민한 소눌 선생은 부친의 지도하에 사서오경을 공부했다. 16세에 주역까지 배웠다고 하니 아마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 같다. 26세에 한성시, 28세에 동당시(진사시)에 합격하여 유학자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는 성재 허전(許傳) 선생의 문인으로 성재문집 초고인 용어와 연보를 정리하고 행장(行狀)을 찬술했다. 창녕과 밀양 등지로 이주해 추원재와 극기재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다. 한일합방을 기해 일본천황이 주는 은사금을 단호히 거부해 구금되기도 했다. 만주로 망명했으나 아들의 죽음으로 밀양 노곡으로 귀향해 자암서당을 건립해 강학을 재개하고 선현의 저서들을 간행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발발하자 김창숙, 곽종석, 장선영 등이 작성한 2674자의 '파리장서'에 서명했다. 파리장서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충청도와 경상도 유생 137명이 작성한 조선독립청원서이다. 이 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해 강학과 저술활동을 계속했다. 1930년 마산으로 이거한 후 이듬해 병사했다. 200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위키백과 참조)

아산 선생이 풍수환괘의 깊은 뜻을 '이재계신과 이신계재'를 인용해 해설한 것은 '환은 형통하니 왕이 종묘를 둠에 지극하여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괘사와, '왕이 해야 할 도리이니 허물이 없음은 지위가 바른 것이다'는 육사효의 효사를 함의(含意)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자로서 자신의 재물을 다 바쳐 후진 양성에 헌신한 소눌 선생같은 분이 부재한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사학들은 제 돈으로 설립한 학교라고 재단 재산을 자기 소유물처럼 사용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거덜 난 대학 재정은 학생등록금과 국고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1991년 이후 우후죽순처럼 설립된 우골탑(?)은 학위 장사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인구절벽으로 입학생마저 태부족한 지방사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물질에 경도되어 이신계재하는 소저소인들이 이재계신 대저군자이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요즘 시중인심이 하도 험악해 시답잖은 일도 큰 시빗거리가 되는 무서운 세상이다. 작은 사건이건 큰 사건이건 터졌다 하면 한몫 잡으려고 혈안이다. 후덕했던 인심은 간곳없고 한 건 걸렸다 하면 봉을 빼려고 찰거머리처럼 물고 늘어진다.

돈에 미친 세상은 결국 아사타사(我死他死)의 자타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요, 일래일거(一來一去)하는 초로인생. 사람이 먼저인지 돈이 먼저인지 나라는 존재가 일락서산(日落西山), 석양에 지는 해처럼 저물기 전에 진중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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