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6 06:21 (수)
인간이하의 존재
인간이하의 존재
  • 경남매일
  • 승인 2024.06.3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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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EBS 장기 기획 시리즈물인 '위대한 수업-Great Minds'에서 데이비드 L. 스미스의 '인간이하의 존재'를 얼마 전 시청했다. 강연 내용이 깊이가 있어서 그의 저서 <인간이하(Less than Human)>를 한 권 샀다. 필자는 3년 전부터 '위대한 수업'의 랜선 강연을 통해서 세계적인 석학들의 저서를 여러 권 구입했다. 건강을 염려하는 자식들은 썩 달가워하지 않지만 책 구입 충동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읽고 쓴다. 고로 존재한다.' 'I read and write, therefore I am'이라고 변명해본다.

<인간이하>에서 저자 스미스는 타인을 인간 이하로 보는 비인간화에 대한 수많은 문헌 탐구를 통해 적나라하게 그 실태를 파헤치고 있다. 인간을 인간만도 못한 존재로 여기고 인종청소를 감행한 끔찍한 만행들을 생생하게 까발리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노예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서구사회의 잘못된 인간성에 분노한다. 인간을 인간이하의 존재로 취급한 역사는 어디 서구사회만 있었겠는가.

고대 중국에서 자행된 비인간적인 끔찍한 형벌은 서구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무색케 한다. 고대 중국 은나라(상나라) 폭군이었던 주왕(紂王)은 포락지형( 烙之刑)으로 악명이 높았다. 포락지형은 뜰에 구덩이를 파고 불타는 숯을 반쯤 채워 넣은 다음 구덩이 지름보다 조금 긴 구리기둥을 그 위에 걸쳐놓아 다리처럼 만들고, 거기에 기름을 발라 사형수들이 그 위를 건너게 했다. 기둥에 기름을 발랐으니 미끄러져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게 하는 악형이었다.

또 사형수를 솥에 삶아 죽을 쑤어 죄인에게 먹이는 형벌도 가했다. 전국시대 삼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반대한 유생 460명을 생매장하여 죽였다. 5천 년의 중국 역사에서 있었던 폭군들이 저지른 인간에 대한 만행은 수십 권의 저술로도 부족할 것이다. 조선시대 폭군 연산군이 자행한 무오갑자사화의 끔직한 악형이나 일제의 만행은 주지하는 과거사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

인간을 인간이하로 취급하는 현상을 비인간화라 부르며 이는 인간성의 말살을 의미한다. 실제로 나치 독일은 유대인에게 '하위인간(Unter Menschen)'이라는 낙인을 찍고 잔인한 방법으로 4백만 명을 학살했다. 미국의 정치철학가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강조했다. 히틀러와 학살 주동자들뿐만 아니라 독재 권력의 프로파간다(선전선동)에 묵시적으로 동조한 독일국민들도 '악의 평범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비인간화가 자행한 천인공노할 대표적인 여섯 건의 대규모 집단학살 사건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헤레로·나마 대학살(독일군이 식민지 아프리카의 헤레로인과 나마인 2만 4천~10만 명을 학살한 사건), 아르메니아 대학살(오스만 제국군이 바쿠전쟁에서 1만~3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사건), 홀로코스트(나치 독일군이 유대인 4백만 명을 학살한 사건), 르완다 내전 대학살(르완다 부룬디 내전으로 후투족과 투치족 50만~80만 명이 학살된 사건), 캄보디아 대학살(크메르루즈군이 자국민 3백만 명을 학살한 사건), 수단 다르푸르 대학살(오마르 알 바시르 정권이 아랍계 주민 3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위의 여섯 가지 대학살은 주로 우월적 인종주의에 의해 자행된 인종청소였다. 이와 같이 다른 종족이나 동족을 인간이하로 취급한 학살 행위는 인간의 이중적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살인 집단과 피살인 집단 즉, 전쟁의 쌍방은 서로가 승자가 되었을 때 똑같은 만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인간의 이중적 태도에 기인한다. 예를 들면 팔레스타인 동요에 '우리 조국은 팔레스타인, 유대인은 우리가 기르는 개라네'하고, 이슬람 랍비 오바디아 오세프는 '아랍인들은 짐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짐승 중에서도 최악이죠'라고 말한다. 남북이 분단된 한국의 상황도 대차 없지만 언급을 삼간다. 엊그제가 200만 명이 사망한 한국전쟁 발발 7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국의 역사저술가인 시오도어 리드 페렌바크가 6·25를 심층적으로 다룬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서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에겐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했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우리도 점점 잊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비인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비인간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는 비인간적인 이중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이런 잘못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도덕성에 벗어나는 행동 지시를 받은 사람 중에 극히 소수만이 그 권위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미친개처럼 짖어대는 프로파간다에 현혹되어 암묵적으로 동조해 버린다. 우리가 천인공노할 인간 대학살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타인을 인간이하로 단정하는 비인간적인 편견불식이 선결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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