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4 08:44 (수)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데는 이유 있죠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데는 이유 있죠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6.19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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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24
이정록 시인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이정록 시인
이정록 시인

반짝이는 것들은 이유가 있다. 반짝이며 팔랑거리는데에도 수만 가지의 이유가 있다. 평화로운 숲속이 나뭇잎이 팔랑거리고 은빛으로 빛난다. 초록잎의 팔랑거림과 빛남의 박자가 사람의 넋을 빼놓는다. 가만히 보고 있으며 빠져든다. 넋을 놓고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수많은 반짝거리는 나뭇잎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초록이 은빛이 되는 것에 빠져들기만 했지, 딱히 이유를 생각지 못했는데 이정록 시인은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이라는 시에서 구구절절한 이유들을 이야기한다. 동화의 세계 속으로 불시착했다.

빛나는 유월이다. 자칫 유월은 권태로 들어설 수 있다. 초록 숲에 대한 신비로움을 접을 무렵이다. 눈이 더는 감탄을 멈추는 시점이다. 초록은 더는 심장을 뛰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앞을 봐도 산, 뒤를 봐도 산인 이 초록의 무성함 앞에서 무료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내 어깨가 처질 때 이정록의 시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은 처진 어깨를 올려주고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감옥 같이 느껴지는 세상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상상력이다. 무료한 일상에, 자주 보는 사물에 무한한 상상력을 불어넣는다면 일상이 살아나고 무덤 같았던 사물들이 비로소 살아 움직일 것이다.

유월에는 이정록의 시에 빠져볼 일이다.

겉으로 보이는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시인의 눈과 시인의 마음을 따라간다. 보이는 것 아래에 수많은 우쭐거림과 몸부림과 아픔과 배려와 눈물과 허기짐과 새로 시작함이 있다. 저 앞산의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우쭐거림'도 있고, 잠든 새를 깨우지 않으려고 '이 악문 채 새벽바람 맞아본 적 있'고, '새와 벌레들에게 수만 번 잠자리를 내어주고', '사람의 집으로 끌려간 기둥이며 장작들, 그 폐가에', '새로 들어온 인생 하나가 마루를 닦고 있기 때문이다.'

저 앞산의 나뭇잎들처럼 우리의 삶 역시도 반짝반짝 뒤집어진다. 삶 속에 고요하고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것들이 조화를 이룬다. 우쭐거림과 으쓱거림과 배려와 어루만짐들이 만나서 세계를 반짝거리게 한다. 이정록의 시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처럼 당신도 그 이유를 삶으로 가져와 찾아보면 어떨까.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갓 때어난 새들과 시소 놀이 해봤냐고

어린 나뭇가지들이 우쭐거리기 때문이다

잠든 새들 깨우지 않으려

이 악문 채 새벽바람 맞아본 적 있냐고

젊은것들이 어깨를 으쓱거리기 때문이다

겨울잠 자는 것들과는 술래잡기하지 말라고

굴참나무들이 몇 달째 구시렁거리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고물고물 애벌레들 발가락에 간지러워 죽겠는데

꽃까지 피었으니 벌 나비들의 긴 혀를 어쩌나

이러다가 가을 되면 겨드랑이 찢어지는 것 아니냐며

철부지들이 열매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 허튼 한숨 소리에

다람쥐며 청설모들이 입천장 내보이며 깔깔거리기 때문이다

딱따구리한테 열 번도 더 당하곤

목젖에 새알이 걸려 휘파람이 샌다고

틀니를 뺐다 꼈다 하는 늙다리 소나무 때문이다

딱따구리는 키스를 너무 좋아해, 나이테깨나 두른

고목들이 삭정이 부러지게 장단을 놓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새와 벌레들에게 수만 번 잠자리를 내어주고

사람의 집으로 끌려간 기둥이며 장작들, 그 폐가에

새로 들어온 인생 하나가 마루를 닦고 있기 때문이다

젊어 어깃장으로 들쳐 맨 속울음의 나이테를

제 삭정이로 어루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걸레를 쥔 사람의 손을 새 발가락인 줄 잘못 알고

눈빛 반짝이는 문지방이며 마루의 나뭇결들

그걸 나뭇잎들이 손뼉 치며 흉내 내기 때문이다

도대체 몇 년 만에 만나는 굴뚝 연기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깨 너머 뒷산들이

폐광의 옆구리를 들쑤시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폐광 속 박쥐들이

날아다기 때문이다

-이정록 시집 의자’(문학과 지성사 200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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