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4 10:04 (수)
김해시사(金海市史)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해시사(金海市史) 누구를 위한 것인가
  • 경남매일
  • 승인 2024.06.1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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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김해근대역사위원회 위원장,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김해근대역사위원회 위원장, 전 영운초등학교장

김해시에서 편찬하여 발간하고자 하는 <김해시사> 26쪽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임나는 5~6세기의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신라나 백제에 복속되어 있지 않은 소국들의 총칭을 가리킨다. 이는 가야 소국들이 신라나 백제와 구분되는 하나의 세력권을 이루고 있었던 사실의 반영이며, 그 임나를 왜 측에서 친근하게 여긴 것은 이들과의 빈번한 교역 경험과 관련된다."

27쪽의 맺음말에는 "그러므로 기원적으로 보았을 때 임나는 창원, 가라는 김해이고, 임나가라는 창원과 김해의 합칭이며 그 중심지는 김해였다고 판단된다. 그 결과 후대에는 임나라고만 해도 김해를 비롯한 경남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한 가야연맹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글의 소단원 제목이 '2)변한과 임나와 6가야'로 6가야사보다 임나사를 먼저 다룬다. 임나가 우리나라 가야가 아니라는 연구나 주장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역사의 주인된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서술한다면 6가야사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 임나가 우리나라 가야가 아니라는 연구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역사를 조작하고 연대가 엉망이며 역사사실이 아닌 것을 소설처럼 쓴 것도 있는 <일본서기>에 의거하여 가야사를 서술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임나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였다는 것이 나오는데, 노골적으로 가야를 임나로 여겨서 가야라는 말도 없이 임나를 언급하여 가야사를 임나사로 취급하고 있다. 임나는 5~6세기의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있었던 소국들의 총칭이라고 하고 있다. 임나는 가야인들이 일본에 가서 세운 가야소국들의 총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은 가야국 전체의 총칭을 임나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없는 것을 역사사실과 연대를 왜곡하고 조작한 <일본서기>에 의거하여 <김해시사>에 이런 글을 함부로 서술하고 있다.

결론부분에서 창원을 임나라고 하는 것은 그냥 글쓴 사람의 생각이 아닐까? 임나를 창원이라고 했다가 또 가야연맹으로 인식하는 이런 글을 함부로 가야사에 쓰는 것은 이런 주장을 비판하고 시정할 수 있는 사람이 <김해시사> 편찬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알게한다. <김해시사> 가야사는 가야를 임나라고 연구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연구결과물을 소개하는 장이 되어있다.

조희승의 <임나일본부 해부>와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 책을 보면 신공기의 임나 7국과 계체기에 나오는 가라의 다다라와 가라 다스쯔, 임나 4현 등을 기비지역 인근에서 찾고 있다. 흠명기에 나오는 큰 강은 낙동강이 아니라 오꾸군에 있었던 신라와 죠도의 가라(아라) 사이에 흐르는 요시이강 이라는 것을 <일본지명대사전>을 통하여 밝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야 사람들의 일본진출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815년에 편찬된 <신찬성씨록>인데 기비지방 가야소국 왕들의 후손 8명이 나온다. 미찌다노무라지는 기비 임나국 가실왕의 후손이고, 다다라노기미는 미마나가야국 나리구모국왕의 후손, 아라아라노기미는 임나국 풍귀왕의 후손, 미마나노기미는 미마나국 모류지왕의 후손, 오도모노미야쯔꼬는 임나국 용주왕의 후손, 오오찌노오비또와 시미즈노오비또, 히라따노오비또는 임나국왕 쯔누가아라히또의 후손이다.

'가야=임나설'은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심상소학 국사보충교재>를 발행하면서 일제가 식민지 고토 회복이라는 침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가야가 임나라는 교육을 실시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광개토태왕비문의 '임나가라(任那加羅)', <삼국사기>'강수열전(强首列傳)'의 '임나가량(任那加良)', 진경대사탑비에 언급된 '임나 왕족' 기록을 임나가 한반도에 존재하였다는 자료로 선생들에게 가르치라고 한 것을 식민사학 카르텔의 역사학계가 그대로 따라왔는데 이것이 김해시사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세가지 근거를 학술적으로 극복한 연구들은 임나가 우리나라 가야가 아니라고 한다. 이런 연구들을 소개하면서 가야인들이 일본에 세운 소국이라는 것을 필자도 4회에 걸쳐 경남매일에 칼럼을 썼다.

'가야가 임나'라는 <김해시사>를 쓰는데 17억이 넘는 국민세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가야사=임나사'가 극복되지 못한 상태로 <김해시사>가 간행된다면 감사원의 감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굴욕적인 <김해시사>다. 조선총독부의 '가야=임나' 학설을 소개하는 장이 되어있는 <김해시사>를 보니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희진의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 책에 국민의 혈세가 무사안일한 관료들의 손을 통해 학계 기득권 세력에게 선심 쓰듯 뿌려지는 모습이 충격적으로 나오는 것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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