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7 00:36 (수)
푸른 사각 테이블서 섬세한 기술 펼칠 때 장애 벽 못 느껴요
푸른 사각 테이블서 섬세한 기술 펼칠 때 장애 벽 못 느껴요
  • 이수빈 기자
  • 승인 2024.06.10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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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체전에 바란다 인터뷰
박지현 경남장애인당구협회 회장

접근성 높아 남녀노소 쉽게 즐기는 스포츠 '자리'
휠체어 탑승 따라 경기 구분… 1·3쿠션 종목 진행
훈련장·선수 부족, 취업·동아리 활동 지원 필요
"지적 장애인 교실 만들어 당구 매력 알리고파"
오는 10월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경남장애인당구협회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는 10월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경남장애인당구협회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딱... 딱.. 딱' 푸른 사각의 당구 테이블 위에서 당구공들이 연이어 부딪히며 경쾌한 타격음을 만들어 낸다. 큐를 잡고 신중히 공을 응시하는 선수의 눈에서 무거운 긴장감이 느껴진다.

당구는 남녀노소, 장애인 할 것 없이 손쉽게 즐기는 스포츠지만 국제 올림픽 및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는 채택돼 있지 않다. 지난 2011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정식 종목이 됐으며 현재 약 600명의 장애인 당구 선수들이 여러 국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오는 10월 김해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전을 위해 기량 향상에 여념이 없는 '경남장애인당구협회'(회장 박지현, 이하 협회) 훈련장을 찾아 장애인 당구 선수들을 만나봤다.

◎ 선수 멘탈 성적 좌우… 중점 훈련

지난 2010년 11월 설립된 협회는 현재 20명의 등록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김해 대청동에 있는 협회 훈련장에서는 남녀 장애인 선수 10여 명이 연습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밝은 분위기 속에서도 본인 차례를 맞은 선수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큐로 공을 타격했다. 선수들은 플레이가 성공하면 칭찬과 응원을, 실수에는 조언과 격려를 하며 연습을 이어 나갔다.

박지현 회장은 "경남에서 개최되는 체전인 만큼 경남이 종합 순위 3위 입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구가 순위 상승에 한몫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고 말했다.이어 "당구는 상대 선수와 좁은 당구대 위에서 승부를 겨루기 때문에 실력도 중요하지만 숨소리나 움직임도 예민하게 느껴지므로 멘탈 관리가 중요한 승부요인 중 하나다"고 강조했다.

선수들도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지난해 장애인체전에서 여성 3쿠션 종목 은메달을 수상한 박미혜(60) 선수는 "직장 동료 따라 취미 삼아 즐기던 당구였는데 어느새 전국대회까지 출전하게 됐다"면서 "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있다. 대회 당일 컨디션과 심리 상태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희귀질환으로 인해 손, 다리 등의 사용이 불편한 노영찬(54) 선수 역시 지난해 장애인체전에서 남성 휠체어 3쿠션 종목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지난해는 행운이 따라 체전뿐만 아니라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며 "하루 10시간 이상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미혜 선수가 본인의 공을 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박미혜 선수가 본인의 공을 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 휠체어 탑승 따라 경기 등급 나눠

당구는 기본적으로 당구테이블에서 공을 부딪혀 득점하는 경기다. 동호인들은 공을 4개 놓고 치는 '4구'를 주로 하지만 대회에는 3개만 놓는 '3구'가 정식 종목이다. 당구테이블에서 고무가 붙어있는 안쪽 프레임을 '쿠션'이라 한다. 정해진 본인 공(수구)으로 쿠션을 3회 이상 닿게 하고 나머지 두 개 공(적구)을 모두 터치하면 득점하는 '3쿠션' 경기가 대표적이며, 쿠션을 한 번 이상을 닿게 하고 두 개의 적구를 터치하면 득점으로 인정되는 '1쿠션' 경기가 있다.

장애인 당구 종목은 아직 스포츠등급이 세밀하게 구분되지 않아 휠체어 탑승 여부로만 등급이 나뉘고 있다. BIS(Billiards Stand, 비휠체어 선수)와 BIW(Billiards Wheelchair, 휠체어 선수) 두 등급으로, 각 등급별 3쿠션과 1쿠션, 팀 전의 세부 종목이 있다. 박 회장은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휠체어 선수, 여성 선수가 부족해 팀을 꾸리기 어려운 실정이다"고 했다.

휠체어 선수들은 몸이 조금 불편할 뿐 일반 선수들과 동일하게 경기가 가능하다. 간혹 휠체어 선수들은 당구테이블 모델에 따라 치는 자세(스텐스)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박 회장은 "일반 당구경기와 다른 규정으로는 휠체어 방석의 높이 제한이 있는 부분이다. 높이가 높을수록 경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휠체어는 방석을 포함한 높이가 55cm로 제한된다. 발이 바닥에 닿으면 안 되며 엉덩이 두 쪽이 모두 휠체어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또한 브릿지(큐걸이)가 어려운 장애를 가진 선수들을 위한 보조 브릿지 등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일반 당구와 다른 부분이다.

휠체어를 탄 노영찬 선수가 당구 훈련을 하고 있다.
휠체어를 탄 노영찬 선수가 당구 훈련을 하고 있다.

◎ 훈련 지원·선수 발굴 필요

고충도 크다. 특히 훈련장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체육회에서 지원되는 우수선수 훈련장이 있지만 별도 전용훈련장은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협회는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도·감독을 받고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훈련장을 마련했다. 그러나 선수들이 여유 있게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은 아니다. 박 회장은 "테이블이 두 개뿐이라서 훈련장이라고 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어느 선수든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휠체어나 도구사용이 잦은 장애인들은 일반당구장에서 훈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구장주도 선수들에게 무상으로 연습 장소를 제공할 수 없는 노릇이며, 훈련지원금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협회도 이곳의 임대료, 유지관리비 등을 지속해서 부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므로 체육회 등에서 지원이 좀 더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체와 연계한 장애인선수 취업 지원이 미흡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경남 선수가 타 시도의 추천으로 취업 지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수한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치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취업 지원도 확대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임원과 지도자를 겸임할 수 없는 체육회 규정으로 현재 협회 내 감독 보직이 공석인 점도 지적했다. "당구 종목 장애인지도자 자격증을 갖고 있으나 현재 회장을 맡고 있어 선수들을 지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선수들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도가 이뤄져야 하는데 안타까운 상황이다"라며 개선 필요성을 나타냈다.

이 밖에도 구장이용, 레슨, 장비 구비 등 훈련비용 지원 확대와 함께 지역 선수 발굴, 동아리 활동 활성화, 도 체육대회 세부 종목 확대 등에 체육회에서 적극 나서달라고 협회 관계자와 선수들은 입을 모았다.

박지현 경남장애인당구협회 회장.
박지현 경남장애인당구협회 회장.

◎ 장애인 선수 위한 봉사 지속

경남당구연맹 현역 선수이기도 한 박 회장은 지도자의 꿈을 가졌으나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회장 자리에 피로감을 느낀 선수들을 위해 지도자가 아닌 회장으로 선수들과 함께하게 됐다. 무엇보다 젊은 나이와 여성인 점이 눈에 띈다. "제가 취임하고 선수단 분위기가 밝아지고, 성적도 잘 낸다는 말을 들으니 그만큼 좋은 게 없었다"며 "회장이 공석일 때 어디 가도 어깨도 못 펴는 것 같고 씁쓸했다는 선수들에게 힘이 되는 거 같아 마냥 즐겁고 좋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젊고 섬세한 감성을 더해 선수들의 기량이 더 높아지고 더 밝아지는 날까지 봉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지적장애인들의 당구교실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맡은 업무가 많아 시간이 늘 부족하지만 기회가 되면 지적장애인을 위한 재활과 당구의 매력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전했다. 한편, 박 회장은 대한장애인당구협회 이사를 재직하고 있으며 당구용품 브랜드 프레데터의 한국총판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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