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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 문화의 근본 '얼'
민족정신 문화의 근본 '얼'
  • 경남매일
  • 승인 2024.06.0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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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법동사 주지·아리랑문화진흥원장 문학예술인
고성 법동사 주지·아리랑문화진흥원장 문학예술인

자라면서 "얼빠진 짓하지 마라"라는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얼 즉 정신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경책이었다. 우리 민족은 얼을 삶의 근본에 두고 살았다. 그래서 얼이 담겨 있지 않은 짓을 하면 가차 없이 꾸짖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일상을 얼과 함께 살았다.

그림을 그리거나 풍물을 두들기거나 밥상을 마주 할 때 얼을 근본에 두었다. 우리 그림 민화는 얼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얼을 헤아리는 것은 민화는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를 헤아리는 근본이다. 이에 민화의 세계는 우리 민족의 얼 즉 정신문화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라는 문제부터 들여다보려 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학문적 탐구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아니 일본인이 남겨 놓은 쓰레기를 주워 비애(悲哀)의 문화, 한(恨)의 문화로 인식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밑에서 심부름을 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 온 이들이 앞장서 가르쳤다. 단 한 차례의 성찰(省察)없이 학문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전통문화의 근본인 얼을 멀리했다. 아니 스스로 우리의 얼을 버렸다. 일본인들이 만들어 준 悲哀(비애)의 예술, 恨(한)의 예술 그리고 신이 보듬어 주는 황국신민으로 살았다. 광복을 맞았지만 스스로 전통문화를 暢達(창달)할 능력을 상실했다. 다만 享有(향유)하는 식민근성에 허우적거리는 민족이 되었다.

그래서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등재를 할 때 서정민요 즉 넋두리민요라 했다. 그뿐인가? 부채춤, 한량무, 판소리 등등 부채를 들고 흔들거나 접었다 펼친다. 단오에 임금이 부채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이를 듯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식혀주는 용도로 쓰인 것은 아니다.

어느 때 한량무를 공연을 마친 명인과 대화 속에 "왜!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느냐"라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살며시 웃으며 "사실 저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라고 했다. 놀랄 일이다.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무희도 모르는데 관객이 어찌 그 춤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이게 우리의 전통문화의 현실이다. 그뿐인가? 평양검무, 진주 교방무 등등 칼을 들고 춤을 춘다.

왜! 칼을 들고 춤을 출까? 부채와 칼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함께 접합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학문적인 연구는 없다. 이를 거론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아리랑(Arilang)을 연구한 결과 선조들이 남겨 놓은 얼 속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민화의 세계"는 얼을 근원으로 이어 갈 것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 우리의 얼 즉 정신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제 얼 즉 정신문화의 흔적을 찾아서 먼 옛날로 돌아가 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신석기 사람들이 살았다. 그들은 집을 짓고 토기를 만들고 농사를 지었다. 지금으로부터 8천 년 전 아니 1~2만 년 전 일수도 있다. 지난 2007년 경남 창녕 비봉리에서 통나무배와 소위 빗살무늬 토기편이 수없이 발굴되었다.

소위 빗살무늬라는 토기는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부산 영도 동삼동 폐총유적, 서해안 오이도, 강원도 양양 오산리, 서울 암사동 등등 헤아릴 수 없는 곳곳마다 신석기시대 토기편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이를 빗살무늬라 부른다. 그러나 토기에 새겨진 무늬는 매우 다양하다. 머리를 빗는 빗살만 그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단순히 빗살무늬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오히려 신석기 사람들이 남겨놓은 다양한 무늬를 헤아리지 못하는 듯하다. 최초 빗살이라 부른 사람은 아마 일본인이 아닐까? 다양한 무늬 가운데 斜線(사선)으로 그려진 무늬를 빗에 비유하여 부른 듯하다. 이를 追從(추종)하여 魚骨文(어골문), 단사선문, 반죽관문, 상반죽관문, 하반죽관문, "V"자형, 역삼각형, 원점 등 한문과 영어까지 동원하여 의미도 없이 빗살무늬처럼 부르고 있다.

따라서 무늬를 남긴 신석기 사람들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용어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전국 박물관을 둘러볼 때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그리고 철기시대 그 이후 수많은 토기와 도자기를 만난다. 그냥 본 것이 아니라 헤아려 보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신석기시대 토기에 남겨진 무늬는 청동기시대는 물론 삼국시대로 이어져있었다. 다뉴세문경에 남겨진 수많은 무늬가 삼국시대 토기로 이어져 왔다. 그래서 필자는 빗살무늬라는 한정된 범주에 매몰된 용어보다 다양한 무늬를 포괄하는 "살(乷)무늬"라는 새로운 용어로 고쳐 부르기로 했다.

본론으로 돌아가 우리 그림 민화 속에 살(乷) 즉 살무늬를 드러내는 기법이 담겨져 있다. 이를 '바림'이라 부른다. 가장 기초적인 彩色法(채색법) 바림에 乷(살)이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바림을 잘해야 우리 그림 민화의 맛을 살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살무늬가 지니고 있는 인문학적인 의미를 헤아려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따라서 바림으로 표현되는 살은 흔히 부르는 햇살이라는 용어 속에서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 햇살은 해와 살로 나누어진다. 해 즉 태양으로부터 살이 드리워진다. 이를 우리는 햇살이라 했다. 바림은 햇살이 드리워지듯 표현하는 기법이다. 우리 그림 민화는 바림기법의 숙련정도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진다. 햇살의 살은 하늘의 뜻을 드러내는 우주대자연의 신비로운 현상이다.(다음 호에 계속)

바림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조순남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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