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동화작가
동화는 당면한 문제해결·갈등 폭넓게 수용
실생활 심리적 문제 상황 치유하는 매개체
어린 시절에 동화를 많이 읽었는가? '동화'라는 말만 들어도 따뜻해지고 상상력이 하늘까지 확장될 것 같다.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에 꽂혀있는 동화책을 빌려서 읽어볼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아이를 다 키우고 난 뒤 동화책을 책장에 남겨두고 한 번씩 넘겨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어른들도 있다.
동화를 읽는 어린 독자뿐만 아니라 어른 독자도 자신이 가진 무의식의 원형이나 내면의 인격이 의식화되는 과정 등을 상징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주변의 다양한 양상이나 갈등을 폭넓게 수용할 수도 있다. 동화는 실제 생활에서 겪고 있는 심리적 문제 상황을 치유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공부와 독서로 빈틈없이 의식을 단단하게 정립해 오다가, 동화를 쓰면서 사람을 배웠고 좀 더 유연해졌으며,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이재민 동화작가를 지난달 29일 오후 4시에 김해 흥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동화 작업을 위해 물리적·심리적 루틴과 고요함 속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이 작가에게 동화를 쓰게 된 계기와 어떤 동화를 쓰고 싶은지 등 동화에 관한 여러 물음을 던졌다. 동화를 읽으면 어떤 면이 좋을까? 이 작가의 말에 답이 녹아 있지 않을까.
▶동화를 정의해달라
동화란 '독자를 위한 욕망의 의식적 탈출이며 전복이다.' 여기서는 어린이와 어른을 포함한 독자를 말한다. 동화는 어린이만 읽는 장르가 아니다. 서정성이 바탕이 된 동화도 출간되고 있지만, 특히 요즘 출간되는 동화는 소재의 특별함과 다양함, 시공간의 확장성이라는 경향을 염두에 뒀다.
동화의 주인공은 기존 질서와 규범을 전복하고 탈출해 판타지 공간에서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한바탕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고 변화된 인식으로 제자리에 돌아온다. 서정성이 짙은 동화에서 상징이나 이미지, 시공간의 변화를 통해 주인공은 기존 질서나 규범을 대하는 지각과 인식이 변하게 된다. 동화는 욕망의 의식적 탈출이고 규범의 전복이다.
▶동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재미가 중요하다. 재미는 끝까지 읽도록 독자를 사로잡는다. 특히 어린이 독자들은 재미가 없어서 감정 이입이 안 되고 지루하면 금방 책을 덮어버린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작가의 기술성이다. 작가의 기술성은 어떤 재미 요소로 독자의 욕구와 감정을 자극해 읽기에 빠져들게 한다. 다음으로, 독자는 서사를 통해 대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편견에 갇히지 않게 된다. 주인공은 동화의 서사 속에서, 독자는 그 동화를 읽어나가면서 변화를 겪는 것이다.
▶동화는 어떻게 쓰게 됐는가
신호등만 보고 다니던 시절, 정체된 창원터널 앞에서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불모산의 단풍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해온 책 읽기와 글쓰기는 주로 강의 자료를 위한, '일'로서의 수단이었다. 나는 무얼 하고 싶었지? 무얼 하고 싶었더라. 답은 '나를 위한 글을 쓰자'였다. 두 학기 정도 수필 글쓰기를 하다가 동화가 쓰고 싶어서 부산에 있는 동화 창작 교실 '글나라'에 자기소개서를 내고 인터뷰를 통과한 후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동화 수업은 탈출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화 창작 교실 글 친구들이 출판사 공모전에,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생겨서 마구 적은 동화를 공모전이나 신춘문예에 응모해 수없이 떨어졌다.
지난 2016년에 지역문예지의 동화 신인상에 당선됐고, 이 상은 5년 후 신춘문예 당선에 도달하도록 징검다리가 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고 있던 강의가 전면 중단됐다. 전화위복이 돼서 동화 쓰기에만 집중한 결과 지난 2021년에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됐다.
▶내(작가) 삶의 방향성과 동화 쓰기가 관련이 있는가?
동화는 내 의식의 완충지대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키다. 동화를 쓰면서, 또 학교나 특별한 장소에서 작가로서 어린이 독자들을 만나거나 수업하고 난 뒤에는 꼭 하는 다짐이 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돼야겠다'라는 것이다. 동화를 쓸 때 '깊게 볼 수 있는 눈, 누군가 놓치는 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선한 눈을 가져야지'한다. '게으름 부리지 말고 좋은 작품을 쓰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늘 느긋함을 동반한다.
▶동화 속에 담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대상을 보듬어 주는 동화. 작은 사건이라도 어린이라는 연약한 존재가 훼손되지 않고 선함을 지켜 스스로 위대해지는 순간을 느끼게 하는 동화. 차라리 환상이었으면 하는 현실에서 한바탕 아픔과 소동을 겪어도 축제를 마친 듯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어른에게 동화 읽기를 권하는 이유
미성숙한 어린 존재들을 위해, 그저 선과 악을 구분하게 하고 주인공처럼 바르고 모범적인 생활을 본받아 성공으로 나아가게 하는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동화고, 동화의 역할이라고 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동문학은 독자의 경계가 아주 유연한 장르다. 우리는 신체적 성장기를 거쳐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으로 통과하는 동안 성공과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며 의식과 내면이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동화의 서사 속에 내포된 현실 반영과 가치, 등장인물이 어떤 존재에게 가지는 관심과 인물의 현실 인식, 당면문제, 과업은 우리 자신의 전 생애와 관련이 있다. 어른의 삶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은 않다. 어른도 환상과 꿈이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무언가를 희망하며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낀다. 동화를 읽다 보면 몽상가가 되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들로 삶을 채워 갈 힘을 얻게 된다.
잠자는 것을 아까워해서 병까지 얻었던 이 작가는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넓고 깊다. 끝없이 공부하고 사유하는 이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동화는 그저 어린이를 위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가고자 하는 이들이 읽어야 할 사유의 보고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동화를 읽는다면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질 수 있을까.
이재민 동화작가 프로필
☞ 부정기적으로 작가의 만남과 사람책도서관 강의,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위한 인문 글쓰기를 강의와 의뢰가 오면 대상과 주제에 맞춰 강의를 나간다. 김해지혜의바다도서관에서 초등, 진영도서관에서 청소년 독서동아리를 맡고 있다. 경남문학 동화부문 신인상 수상,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 '공간과 장소에 부여된 가치, 장소성'으로 '어린이와 문학'에서 공모한 신인 평론가 상을 수상했다. 개인 저서로 '고래와 나', '떡배와 무쇠솥' 공동 저서로 '어쩌다 가락국 여행', '구석구석 재미있는 김해 옛이야기'. 2023년 김해의 책 시민 작가 도서에 '고래와 나'가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