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7 18:59 (수)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오후 6시∼새벽 1시 문화 향유 열정 '빛나는 별'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오후 6시∼새벽 1시 문화 향유 열정 '빛나는 별'
  • 한지현
  • 승인 2024.05.29 22: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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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5월 18일 '유럽 박물관의 밤'

매년 5월 토요일 박물관 밤 개방 이벤트
베를린서 유래, 유럽 전역으로 확산
한밤중 박물관 앞 긴 줄 행렬 진풍경
가이드·음악·상영·아틀리에 등 행사 다양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퐁피두 센터 미술 콘퍼런스.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퐁피두 센터 미술 콘퍼런스.

그동안 선선했던 날씨가 서서히 따사로워지는 계절에 접어든 파리의 오후, 햇살을 맞으며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중 박물관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저녁노을이 고개를 드러내자 박물관을 빙 둘러싼 관람객들의 행렬이 점차 완성된다. 지난 18일 토요일 밤, '유럽 박물관의 밤(Nuit europeenne des musees)'을 알리는 환한 네온사인이 사람들을 환영한다. 잠 못 이루는 밤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발길과 함께 별빛 아래 파리의 거리는 은은한 불빛들로 장식된다.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로 붐비는 오랑주리 미술관 입구.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로 붐비는 오랑주리 미술관 입구.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유럽 박물관의 밤' 행사는 프랑스를 비롯해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 39개국이 선보이는 연례행사다. 세계 박물관의 날인 5월 18일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토요일을 선정해 매년 유럽의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은 관람객을 향해 무료로 문을 개방한다. 1년에 단 한 번 있는 이날, 박물관 운영 시간은 길어진다. 해가 저무는 오후 6시부터 늦은 밤 새벽 1시까지 박물관 관람은 물론이고 다채로운 문화 행사의 향연이 이어진다. 프랑스에서는 교육부가 초중고 학생들이 이날 밤만큼은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다.

'유럽 박물관 밤'의 역사는 독일에서 비롯됐다. 베를린시는 시민의 박물관 관람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 1997년 처음으로 '박물관의 긴 밤(Lange Nacht der Museen)' 행사를 개최했다. 베를린 시민들로부터 야간 개장이 호응을 얻자 지난 1999년 프랑스는 봄 중 일요일 밤 하루를 선정해 박물관 무료 개방을 시작했다. 이후 이 문화의 바람은 유럽 전역으로 점차 확산됐다. 지난 2001년, 유럽의회 29개 회원국이 '유럽문화협약'에 서명하면서 해당 행사는 '박물관의 봄 (Printemps des musees)'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지난 2005년에 이르러 10개의 국가가 더해져 총 39개 국가가 이 행사에 동참했고, 이것이 '유럽 박물관의 밤'이라는 현재의 공식 행사로 정립됐다.

모네의 '수련' 연작 앞 작품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모습.
모네의 '수련' 연작 앞 작품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모습.

독일 베를린 시민을 대상으로 했던 행사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데는 유럽 각국이 자국의 문화와 역사의 중요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공동의 바람이 담겨 있다. 유럽 국공립박물관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해당 행사에는 오늘날 파리를 대표하는 루브르 박물관, 오랑주리 미술관, 퐁피두 센터, 오르세 미술관, 케 브랑리 박물관 등을 비롯해 프랑스의 약 1300개의 박물관 및 유럽 내 3000개 이상의 박물관이 참여하고 있다. 젊은 관람객에게 지루할 수 있는 문화공간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기 위해 야간 개장을 비롯한 혁신적인 문화 행사를 유치하는 시도는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박물관 폐장 시간까지 이어지는 관람객들의 작품 감상.
박물관 폐장 시간까지 이어지는 관람객들의 작품 감상.

박물관 가이드 프로그램, 콘퍼런스, 음악 공연, 영상상영회, 창작 아틀리에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박물관의 밤을 가득 채운다. 자연광이 담긴 낮의 작품과 대비해 은은하고 찬란한 빛으로 밝혀진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박물관의 밤 행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1년에 단 한 번 만날 수 있는 이 특별한 경험을 위해 한밤중 팸플릿을 손에 든 채 박물관 마라톤을 즐기는 관람객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녀노소 모두 밤길을 따라 박물관을 산책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늦은 시간 퐁피두 센터 앞 줄지어 선 관람객들.
늦은 시간 퐁피두 센터 앞 줄지어 선 관람객들.

이날, 낮보다 아름다운 밤의 불빛에 담긴 박물관은 유럽 국가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예술을 보다 가까이에서 향유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밤중에도 미소를 띠고 관람객을 맞이하는 박물관 직원들, 늦은 밤 지치지 않고 여기저기 부지런히 다니는 관람객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문화를 향한 진정한 열정이 느껴진다. 잠 못 이루는 파리 박물관의 밤, 낮보다 아름다운 밤 박물관의 '문화의 봄'이 유럽 곳곳에서 더욱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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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정 2024-05-30 11:31:55
여름밤이 되면 날씨는 후덥지근하지, 잠은 안오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곤 합니다. 한국에서는 하릴없이 집 근처 편의점이나 공원을 도는데요, 그마저도 치안 때문에 너무 늦은 시간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파리에서는 박물관의 밤이라는 행사를 열어 무료로 박물관을 열어 전시, 공연 등을 선보인다고 하니 마냥 부러울 따름입니다. 우리도 방황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아줄 건전하고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