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1 10:14 (금)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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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5.22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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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21
박준연 시인 '유월 정원'

보이는 것을 보고, 실재를 감지하고
왜곡하지 않고, 작은 것에 복무해야

박준연 시인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의 세계를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현상에 나타난 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 왜곡할 뿐이다.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환영 속에서 살고 있다. 다만 그것이 환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 뿐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일을 다르게 기억하고 받아들인다. 목격자의 진술이 서로 다르다. 그것은 인간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보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확대 해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사실들을 아주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보았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이다. 그러나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정답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봤다고 하는 것들은 입장과 위치, 관점이 달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본 것은 내가 본 것일 뿐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진실 앞에서 잠시 초록 숲이나 정원을 바라보고 싶다면 박연준 시인의 시 '유월 정원'을 담담하게 읽어보길 권한다.

유월의 정원은 초록과 꽃들로 가득 찬다. 유월이면 식물들이 빈틈없이 자라고 피어난다. 화려하게 피는 꽃들의 색깔이 초록과 조화를 이룬다. 초록은 어떤 색과 같이 있어도 조화를 깨지 않는다. 화엄의 세계를 이뤄내는 일등 공신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이 가진 영혼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 우월감으로 무엇을 하는가? 지구의 조화를 깨뜨리는 데 앞장서는 일 말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발 이제 높다고 생각한 데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자. 모든 것을 안다는 우월감에서, 모든 것을 지배 가능하다고 하는 교만에서 내려가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좁은 나의 시각으로 본 일부분이라는 것을 '유월의 정원'이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영혼을 낮은 언덕에 심고/ 이제부터// 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는 박연준의 '유월 정원'의 시구절처럼 영혼을 낮은 언덕에 심어야 할 때가 왔다.

'유월 정원' 시를 읽으며 거대한 것을 꿈꾸는 과대망상에서 벗어나, '조화롭게 내 곁에서 피고 지는 작은 꽃들과 나무 앞에서, 정원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만큼 바보인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유월 정원

바보를 사랑하는 일은 관두기로 한다
아는 것은 모르는 척
모르는 것은 더 크게 모르는 척
측립(側立)과 게걸음은 관두기로 한다
보이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은 채
실재를 감지하기로 한다
행운도 불행도 왜곡하지 않기로 한다
두려움에 진저리치다
귀신이 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다
마음을 김밥처럼 돌돌 말아 바닥에 두지 않기로 한다
먹이가 되어 먹이를 주는 일,
본색을 탐색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다
부수는 건 겁쟁이들의 일,
집을 부수는 대신 창문을 열기로 한다
두 시간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

결혼이란 
오른쪽으로 행복한 사람과 왼쪽으로 불행한 사람이 
한집에서 시간을 분갈이하는 일,
뒤척이는 화분에 물을 주기로 한다
진딧물도 살려주기로 한다
영혼을 낮은 언덕에 심고
이제부터
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
-박연준의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에서(문학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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