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1 22:33 (금)
"나를 어떻게 알고 있죠" 궁금하면…
"나를 어떻게 알고 있죠" 궁금하면…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5.16 2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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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넘기기 18
R. D. 프레히트의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알 수 있는 것·가능성·희망 점검 시간
자신 상태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보기
삶 즐거움 위해 무분별한 탐욕 절제
R. D. 프레히트의 책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책표지.
R. D. 프레히트의 책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책표지.

유쾌하고 재밌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살짝 머리가 아픈 고민을 하면서 맛있고 시원한 수박을 먹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삶의 근원적인 고민을 피하면서 단순하게 살다가, 갑자기 그 단순함이 지겨워서, 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주체란 무엇인가? 자아란 무엇인가? 이런 고민 말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또는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프레히트의 이 책을 넘겨보길 권한다. 이 책을 사서 차례만 넘겨봐도 이런 고민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이런 고민으로 철학의 주변을 얼쩡거려본 사람들은 훅 빠져들지도 모른다. 어려운 주제를 끌고 가는 작가의 입담이 만만치 않다.

'소크라테스에서 뇌과학까지 삶의 의미를 찾는 철학 여행'을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쓴 작가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다.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철학자다. 저널리스트이며 작가이자 현재 독일어권에서 가장 인정받는 지성인 중 한 명이다.

프레히트는 머리말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식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고전적인 질문은 오늘날에는 단지 제한적으로만 철학적 질문에 해당한다. 이 질문은 인간의 인식 기관과 인식 가능성의 기초를 우리에게 설명하는 뇌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다뤄지는 주제다.'라고 한다.

이 책의 1부는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인식의 문제) 2부는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윤리와 도덕의 문제) 3부는 내가 희망해도 좋은 일은 무엇인가?(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부딪치는 행복, 자유, 사랑, 신 그리고 삶의 의미 등에 관한 질문) 이렇게 차례대로 묻는다.

차례를 보고 그동안의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가 왔다고 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머리가 지끈하고 아픈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프레히트는 친절하게 '물음을 던지는 것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우리의 소중한 능력이다. 충족된 삶의 비밀은 배우고 즐기는 데 있다. 배우기만 하고 즐길 줄 모르는 삶은 슬퍼지고, 즐기기만 하고 배울 줄 모르는 삶은 어리석어지기 때문이다.'고 말하며 또 '자기 삶의 시인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슬픔과 고통, 온갖 불쾌와 번거로움 등등 속에서도 자신의 상태를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상태를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메타인지적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프레히트를 따라가 보자. 눈길을 끄는 부분을 부분 발췌하고 편집해서 소개한다.

철학은 자아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미확정으로 내버려둔다. 자아는 어떤 식으로든 영원히 체험되고 있다는 말인가? 자아 감정이 비록 여전히 유동적이라 하더라도,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내가 무엇인가를 완전히 의식적으로 회상해 내고 그것을 혼자 힘으로 기억의 서랍에서 끄집어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체험을 언어로 포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암기하면서 배운 시처럼 단어들 속에서 그냥 나열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회상한 것을 심사숙고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알고 있기만 한, 언어를 완전히 배제한 성찰은 인간의 뇌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은 언어와 연관이 있다면, 그토록 탁월한 인식 도구인 언어는 도대체 무엇일까?

비트겐슈타인은 '한 문장에는 하나의 세계가 시험 삼아 조립되어 있다.',  '한 단어의 의미는 언어생활에서 사용되면서 규정된다.', '만약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사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쇼펜하우어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나는 원할 수가 있는가?'는 도발적인 질문을 한다. 이성이 주인이 아니라 의지가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마음이 싫어하는 것을 머리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고 한다.

'자아감정은 자신의 직접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대상으로 옮겨 간다. 이는 소유 자체의 의미가, 인격이 대상의 내부로 확장돼 들어가 대상을 지배하는 가운데 자신의 확장 영역을 획득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지멜은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지나치게 과도한 쾌락 또한 주의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즐거움이 너무 과도해지면 그 가치도 급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 조각의 치즈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음미하며 즐기는 것이 떠들썩한 잔치를 벌이며 먹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무분별한 탐욕을 절제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인식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희망해도 좋을 일은 무엇인지를 책을 통해 점검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내가 아는 나'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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