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16:45 (목)
영원을 붙잡을 만큼 산 적 있어요
영원을 붙잡을 만큼 산 적 있어요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5.01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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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18
이병률 시인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손익 떠나 사랑한 적" 질문
고민하며 제대로 된 삶 추적
이병률 시인
이병률 시인

제대로 된 삶을 산 적이 있었던가? '제대로 된'이란 의미가 각자마다 다르다. 돈 잘 벌고, 직위가 높고, 공부도 잘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다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방향을 좀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지표를 '마음'이라는 것에 둔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내가 세계를 사랑해서 온몸이 기울어질 만큼, 밑바닥에 닿아도 좋을 만큼 사랑한 적이 있었는지를 고민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감정의 손익 계산을 떠나서 누군가에게 뜨거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이병률 시인의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란 시를 권하고 싶다. 누군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일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한 적이 없는 삶도 삶일까? 물론 삶이다. 사랑한 적조차 없어도 그건 삶이다. 그런데 '이토록'이라는 부사 앞에서 무너진다. '이토록'은 '이러한 정도로까지'라는 의미다. 갑자기 나는 이토록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었는가? 의문을 표하면서 내 삶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진입해야 할 것 같다. 이 시적 화자의 고백이 '나'에게로 전이 된다. '나는 그런 적이 있었는가'. 앞으로 '그럴 생각의 여지가 있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이 있었는지 점검하게 된다.

5월, 나무의 연두색 잎이 초록으로 짙어져 가고 있다. 나무의 뿌리가 땅에 닿아서 힘껏 물을 끌어올리고, 나무는 뜨거운 태양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잎들의 색이 진해진다. 하물며 나뭇잎 하나가 푸르러 지는 데도 나무의 뿌리와 가지가 온몸을 세계에 던져야 한다. 우리가 이루고 싶은, 가고 싶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어디까지 나를 놓을 수 있는지를 이병률 시인은 시적 화자를 통해서 생각해보라고 종용하는 것 같다. '이토록'이라는 말이 가슴 뛰게 한다. 뜨겁게 세상을 안고 싶지도 않고, 두루뭉술하게 피하고 싶은 것은 피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는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있었는가? 그 이름만 떠올라도 피가 뜨거워지는 이름이 있었는가? 한 사람은 세기의 사상가일 수도 있고, 작가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병률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영원을 붙잡았던 적'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당신의 삶이 어떨 때, 그 의미나 타당성이 시간을 초월해서 진리처럼 느껴질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물음에 대해 가볍고도 무겁게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이병률의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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