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3 16:23 (일)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피노 컬렉션, 예술가 희로애락이 현대 예술 공간서 호흡하다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피노 컬렉션, 예술가 희로애락이 현대 예술 공간서 호흡하다
  • 한지현
  • 승인 2024.05.01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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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파리 상업거래소 - 피노 컬렉션

현대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옛 상업거래소
한국 작가 김수자 44개 작품 대형 전시
세계적인 거장들의 시대 인식 작품 주목
과거와 현재 잇는 새 예술 공간 지평 열어
로통드를 둘러싼 진열장 속 김수자의 회화 작품들.
로통드를 둘러싼 진열장 속 김수자의 회화 작품들.

19세기 벽화로 가득한 돔 천장 아래 숨겨진 세상이 고개를 슬며시 내민다. 일렁이는 빛줄기를 따라 땅은 하늘이, 하늘은 땅이 돼 걸을 때마다 장면 하나하나를 새로이 비춘다. 전복된 시공간 속에서 부산한 탄성을 넘어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418개의 거울로 덮인 환상적인 세계, 파리 '상업거래소-피노 컬렉션 (Bourses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에서 만난 한국 작가 김수자의 새로운 작품 '호흡-별자리(To Breathe-Constellation)'다.

빈 공간을 캔버스 삼아 거울로 채워낸 김수자의 이번 작품 '호흡'은 삶을 하나의 천 안에 담아낸 그의 작품 '보따리'의 연장선이다. 어린 시절 이불보를 꿰매던 어머니의 바늘 끝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발견한 그는 지난 40년간 '보따리' 연작을 통해 엉켜진 우리 삶의 궤적에 주목했다. 김수자는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에서의 유학을 시작으로 보따리를 따라 서울, 파리, 뉴욕을 등 세계 곳곳을 유랑했다. 동양적 삶의 성찰을 드러내는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지난 1998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작 '호흡'은 지난 2015년 퐁피두 메츠 센터, 2023년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에서 선보인 바 있다.

로통드에 설치된 김수자의 작품 '호흡 - 별자리'.
로통드에 설치된 김수자의 작품 '호흡 - 별자리'.

피노 컬렉션의 중심 공간인 로통드(Rotonde)를 장식한 이번 대규모 설치 작품 '호흡'은 미술관의 새로운 기획 전시 '흘러가는 대로의 세상(Le monde comme il va)'과 함께 지난 3월 20일부터 오는 9월 2일까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김수자의 전시가 피노 컬렉션에서 드러나는 이유는 작가가 전시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자유롭게 관장하는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 작가로 초대된 점에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통드를 비롯해 그 중심을 에워싼 24개의 유리 진열장과 지하공간에서 총 44개의 김수자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김수자의 작품을 더욱 빛내는 것은 단연 웅장한 공간이다.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오른 돔 모양이 인상적인 피노 컬렉션은 옛 시간이 녹아든 역사적인 공간이다. 유럽의 대부호 메디치 가문의 후계자이자 프랑스의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s)의 저택이 자리했던 자리에 지난 1763년 오늘날 돔 형식의 곡물창고가 지어진 후, 증권거래소, 상업거래소를 거쳐 해당 공간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모해 왔다. 지난 2021년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손을 거쳐 현대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이후, 피노 컬렉션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예술 공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관광객들로 가득한 피노 컬렉션 입구.
관광객들로 가득한 피노 컬렉션 입구.

피노 컬렉션은 미술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를 소유한 그룹 아르테미스(Artemis)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알려진 그룹 케링(Kering)의 설립자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가문의 개인 소장 예술품들을 소개한다. 가업이었던 목재업을 이어받아 명품 및 미술품으로 사업을 점차 확장한 프랑수아 피노는 70년대 미술계에 첫발을 디딘 이래,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미술품 수집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상업거래소-피노 컬렉션'은 지난 2006년 개관한 베니스의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를 이어 그의 두 번째 미술관이다.

피노 컬렉션에는 프랑수아 피노가 50년간 수집한 약 350명의 작가의 약 1만 여 점의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수자뿐 아니라, 제프 쿤스, 마우리치오 카텔란, 데미안 허스트, 신디 셔먼 등 지난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 거장들의 엄선된 작품 50편이 펼쳐진다. 전쟁, 망명, 갈등, 평화 등 최근 수십 년간의 크고 작은 격동과 격변의 순간을 마주한 예술가들의 희망과 절망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회화에서 설치, 영상, 퍼포먼스까지, 세상의 복잡함과 아름다움,시대의 아픔들을 역설적으로 표현해낸 작품들을 보면 마치 세상이 멈춰버릴 것 같다가도, 또다른 작품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역사를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의 애환과 그 흔적들이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공간 속, 작품 속에 새로이 새겨진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눈앞의 예술작품 앞에 잠시 멈춰, 명상하듯 눈을 감아 깊은 숨을 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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